「尹景恩 기자」 『이 선에 맞춰 색종이를 이렇게 접는 거야』
벌써 똑같은 설명을 되풀이한 지 몇 번째. 중고등학생들인데도 지능은 대여섯살짜리 같다. 그럴 때는 한명한명씩 손을 붙들고 가르쳐줄 수밖에.
주부 정은주씨(44·서울 은평구 신사동)는 매주 한번씩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에 나와 정신지체 학생들과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종이접기를 가르친다.
복지관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종이접기를 가르쳐보겠다고 한 것이 1년전. 복지관이 딸려있는 은평천사원에 큰 딸 장화식양(상신중2)이 자원봉사를 갔다와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고 난 뒤였다.
『종이접기가 집중력도 길러주고 성취감도 맛볼 수 있는 좋은 취미인데 장애인들은 배울 기회가 좀처럼 없겠더라구요. 대단한 사회봉사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결코 없어요. 함께 종이접기를 배운 주부들에게 다른 복지관을 소개시켜줘도 모두들 기꺼이 맡아 하던걸요』
7명의 정신지체학생들은 특성이 제각각이라 거기에 맞추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나 처음보다 훨씬 활달해지고 밝아진 아이들을 생각하면 버스를 몇 번씩 갈아타야 하는 길이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휠체어를 탄 몸으로 꼬박꼬박 복지관에 나와 열심히 종이를 접고 가는 할아버지를 볼 때도 마음 한켠이 따스해져왔다.
정씨가 종이접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집중력과 지구력을 키우는 데 좋다기에 두 딸더러 배우게 하려다 학원이 너무 멀어 정씨가 딸대신 다니게 된 것이 계기였다. 재미있고 다양한 종이접기의 세계에 푹 빠진 그는 딸들 가르치는 것은 접어둔 채 한국종이접기협회의 초중고급 과정을 3년에 걸쳐 모두 마쳤다.
요즘은 동네꼬마들과 주부들 몇 팀을 모아 부업으로 종이접기 강사노릇을 한다. 6년째 다니고 있는 서예학원에서도 정씨의 솜씨를 알아본 주부들이 졸라 수업이 끝난 뒤 한 시간씩 무료로 종이접기를 가르친다.
정씨가 특히 아끼는 종이접기 작품은 브로치 귀고리 목걸이 등 정교하게 만든 액세서리들. 조그맣게 접은 색종이를 색색으로 여러개 붙인 뒤 반짝거리는 매니큐어를 칠해 마무리한 깜찍한 작품들이다.
우유곽이나 광고지 한 장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이 무언가를 접어 만들고야 마는 알뜰주부. 정씨의 올해 소망은 복지관에 나오는 장애아들의 어머니들을 위해 종이접기교실을 여는 것이다.
============▼ 종이접기 배우려면 ▼===============
『6개월 정도만 배워도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수준이 되죠. 기본형만 익혀두면 책을 보고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고요』
정은주씨는 집안도 장식하고 부업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종이접기를 주부들의 좋은 취미생활로 추천한다.
종이접기를 처음 배울 때는 책의 기호 보는 법과 간단한 기본형 10가지를 배운다. 비행기 학 바지저고리 등은 기초. 점점 방법이 복잡해지며 여러 개를 잇대어 입체적인 작품도 만들게 된다.
한국종이접기협회(02―766―4561)의 종이접기강좌는 초급 중급A―B―C 고급과정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과정은 6개월 또는 1년으로 다 끝내려면 3년이 걸린다. 수강료는 3개월에 6만원이며 재료비는 월 몇 천원 정도.
종이접기협회의 강좌를 수료한 강사들이 문화센터 사회복지관 등에서도 종이접기를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