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영화보기]「아름다운 비행」

  • 입력 1997년 1월 15일 20시 18분


팜플렛엔 이렇게 쓰여 있다. 「때때로 사랑은…기적처럼 아름다운 여정이며 용기있는 모험입니다」.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토록 오랜 세월 사랑의 감정을 귀히 여기고 그 감정이 발산하는 슬픔과 고단함까지도 생기로 전환시키며 끊임없이 사랑의 단상을 생성시키고 있을 것이다. 어디에도 없는 사랑, 그러나 또 어디에나 있는 사랑. 아름다운 비행은 한순간에 엄마를 잃은 상실감과 낯선 환경이 가져다준 부적응증에 예민해져 있는 열네살짜리 소녀를 사랑의 위력으로 아름답게 단련시킨다. 아니다. 개발업자들의 횡포로 속이 훤히 드러난 늪에서 미처 부화되지 못한 야생 거위알을 서랍장에 넣어 부화시키고 그들에게 걷기 뛰기 날기를 가르치느라 사력을 다하는 안나 파킨의 감수성에 우리가 잠시 노을빛으로 물이 든다. 그렇지. 저런 마음도 있는 거지, 저런 사랑도.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안나 파킨을 어미새로 여기고 있는 새끼거위들이 안나 파킨과 함께 들길을 걷고 몰려다니고 뒤뚱거리고 비비적거릴 때 내 마음 속에 일렁이는 야생성. 안나 파킨이 새끼거위와 함께 욕조에 타월을 깔고 잠을 청하는 동심에 「하아」 웃게 되는 흐뭇함. 사람들이 무엇을 그리워하며 무엇을 보면 행복해지는지를 감독은 아는 것 같다. 거기에다 섬세하기조차 하다. 철새들은 소녀의 행동거지만 따라한다. 왜냐하면 소녀가 엄마니까. 새들은 그들이 날아가야 할 곳이 있는데 소녀는 새가 아니라 날 줄을 모른다. 날개가 없는 소녀는 무명 발명가인 아빠의 경비행기로 다 자란 새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친다. 경비행기를 날개삼아 하늘을 날아 그들이 살아야 할 곳에 데려다 주는 과정을 보는 동안 내 마음 속에 흩어져 있는 동화가 완성된 느낌이었다. 피아노에서 홀리 헌터의 당찬 딸로 출연했던 안나 파킨은 그때보다 훌쩍 자랐는데 참 예쁘게 자랐다. 귀엽고 당차고 여리고 풍부하다. 늪지의 헛간에서 처음 세상에 나온 젖은 새끼거위들을 품고 자는 소녀의 따뜻한 얼굴이나, 경비행기를 탄 소녀가 열여섯마리의 거위와 함께 붉은 노을을 가로지르는 풍경들은 여러 날 나를 행복에 잠기게 하리라. 그래, 때때로 사랑은 기적처럼 아름다운 여정이며 용기있는 모험이지! 신 경 숙 <작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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