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 입력 1997년 1월 22일 20시 51분


「마루야마 겐지 지음/하늘연못 펴냄」 일단 운전대만 잡았다하면 욕쟁이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하면 욕 안하기 캠페인까지 벌였을까. 그러나 문제는 인격이 아니다. 소외다. 운전자가 욕쟁이가 되는 심리의 표층에 드러나는 것은 다른 운전자에 대한 공격성이다. 그러나 그 공격성을 한꺼풀 벗겨낸 심리의 기층에는 명백한 피해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욕쟁이 운전자를 볼 때마다 나는 그것을, 지독한 소외며 단절이라 느끼곤 했다. 문제는 인격이 아니라 물질문명에 의한 인간의 소외인 셈이다.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바로 그런 이륜 자동차가 화자다. 오토바이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물질문명의 대표주자로 선정되어 인간의 소외와 소외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토바이는 자신의 세 주인을 차례차례 분석하고 평가한다. 특공대 출신의 첫번째 기수는 죽을 때까지 나머지 삶을 산화(散華)시키듯 살았다. 그는 오토바이 앞에서 권총자살을 한다. 그의 두번째 기수는 자살자를 취재하러 왔던 신문기자다. 그는 취재보다는 남겨진 오토바이에 더 관심을 두고 그것을 헐값에 구입한다. 오토바이와 애정행각에만 관심이 있던 그 역시 마흔 아홉의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는다. 주인은 죽고 오토바이는 살아남아 스무살짜리 시골 청년에게 넘겨진다.시골 청년은 병든 조부를 버려두고 어릴 적 여자 친구와 함께 시골 마을을 떠난다. 도시에서 닳고 닳은 여자 친구의, 총상당해 죽은 애인도 버려둔 채로. 두 사람을 싣고 달리면서 오토바이는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생각과 갑자기 일어나는 엉뚱한 변화, 뭐라고 형용하기 어려운 참상….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 인간뿐 아니라 자연조차 기계문명에 의해 소외되고 기계문명을 좇는 부차적인 존재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그렇게 말하는 모양이다. 새 주인을 싣고 달리던 오토바이는 또다시 언덕 아래로 구른다. 두 사람은 참상을 입고 오토바이는 불탄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살아남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불굴의 의지력을 무기로 나는 이 세상을 다시 한번 살아 보이겠다. 이제부터 나는 나 자신이 되어 우러러 따를 스승을 지니지 않은 진정한 「움직이는 자」가 되어 보이겠다』 섬뜩하다. 기계문명에 의한 인간의 소외가, 그것을 표현하는 서정적인 문체가 모두 섬뜩하다. 김 형 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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