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력반.
말쑥한 차림의 고교생 9명이 갖고 온 과일과 떡시루를 차려놓고 강력반 형사들과 어울려 조촐한 다과회를 열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집단가출, 상경한 뒤 신촌 가리봉동 등 서울 시내 유흥가에서 웨이터 「삐끼」 등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귀향조치됐던 지방 K시의 모 고교 2년생들.
당시 이들은 학교의 「엄한 교육」에 불만을 갖고 『서울에서 삐끼나 웨이터로 일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만 믿고 미련없이 책가방을 내던지고 가출했었다.
「자유」는 찾았지만 그러나 정작 서울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새벽길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손님들을 「술한잔 더하라」고 꾈 때마다 왠지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고 생각보다 손님이 적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그때 담임 朴泰求(박태구·44)교사와 영등포경찰서 강력반 형사들과 함께 들이닥쳤다. 박교사는 학부모들로부터 가출소식을 듣고 제자들을 찾기 위해 서울로 올라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 강력3반 형사들과 함께 서울의 유흥가를 뒤진 끝에 제자들을 찾아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너희들은 지금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있다. 10년 뒤의 모습을 생각해 봐라. 동네깡패가 될 것인지, 건실한 사회인이 될 것인지…너희들은 너희 인생의 주인이다』
학교 다닐 때 「별(정학)」을 다섯개나 달았던 강력3반장 李光洙(이광수·42)경사는 당시 마뜩찮은 표정을 짓던 학생들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이반장은 그 후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학생들을 처벌하지 말고 한번 더 기회를 주시라」고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후 3개월. 학생들은 이제 모범학생으로 거듭나 이날 「보은의 다과회」를 갖기 위해 과일 3상자, 음료수 5상자와 떡시루를 둘러메고 다시 경찰서를 찾은 것이다.
학교로 돌아간 뒤 「전교 2등」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고모군(17)은 『쓰라린 과거였지만 그만큼 배웠으므로 후회하지는 않는다』며 『경찰대학에 들어가 우리를 「잡아다 준」형님들 같은 마음 따뜻한 경찰이 되고싶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경찰관들은 이날 金永錫(김영석)형사과장의 즉석제의로 자매결연을 하고 앞으로 「형」과 「동생」이 돼 우의를 다져나가기로 했다.
〈李澈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