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길 지음/현대문학 펴냄>
80년대 풍자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던 윤흥길의 「완장」을 기억할 것이다. 권력에 희생당해오면서도 그 권력을 꿈꾸는 우리 현대사의 세태를 완장을 팔에 두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한 인물의 무식한 처세를 통해 보여준 「완장」의 주인공들이 오늘 다시 우리 앞에 와 있다.
완장 찬 무식한 권력자 임종술과 그의 짝이 되었던 술집 작부 김부월. 그들은 야반도주로 고향을 등지고 상경했다가 한강변에서 동반 자살을 할 처지로 전락해 버렸다. 교회 장로에게 인도되어 재활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들에게 정작 구원의 빛을 던진 것은, 다름아닌 종말론이 득세하고 있는 이 시대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사이비 종교집단.
완장 차고 권력맛을 톡톡히 보았던 이들이 사이비 종교가 가진 절대 권력에 편승해 「한몫 잡으려고 거추없이 설쳐대는」가운데 빚어내는 포복절도할 이야기가 「완장」의 속편격에 해당하는 이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현대문학)에서 펼쳐진다.
이 소설은 90년대 들어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섬세하고 감각적인 소설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선 주인공들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친근해서 관심을 두지 않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요절복통할 입담과 관례를 무시한 거침 없는 행동은 우리가 현대인이라는 체면에 매달려 너무 쉽게 잃어버린 「토종 한국인」의 모습을 대표하고 있다.
「날이면 날마다 배창시가 등까죽에 들러붙어서 키쓰를 허니라고 쫄쫄 또랑물 흘러가는 소리만 나는 판국」 「오천원짜리로 코 풀고 만원짜리로 밑 닦을 지경으로 돈을 주체도 못헐 만침 갈퀴질할 날」 등등. 이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내뱉는 저속하고 과장된 말들은 가히 「신토불이」의 지극한 경지를 입증하고도 남을 만큼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미학을 일구어낸다.
이런 입담 속에서 평생을 건달로 살아가면서도 「짠하게 끝내주는 기회」를 잡아보려는 잡초의 거칠고 진득한 욕망이 살아 움직인다. 이 소설은 그런 뜨내기들의 욕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더러운 욕망」을 감추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과연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하고 반성하게 하는 「토속적인 순박함」으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문체가 주는 매력이 뭔지도 모르는 대중소설이나 미문체(美文體)가 주는 섬세함에 경도된 여성소설에만 애정을 품는 우리의 소설독자들이 이렇듯 걸쭉하고 유장한 남성적인 문체가 이끄는 유쾌한 세태풍자소설도 함께 읽어 주었으면 싶다.
박덕규(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