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기자] 지난 91년 이후 제주도에 내려가 작업해온 한국화가 이왈종씨(52)가 그간의 작업을 결산하는 개인전을 갖고 있다. 가족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서귀포 근처의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려온 그는 고분 벽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질감의 회화작업을 완성, 이번 전시회에 처음 선보인다. 아울러 외로운 작업과정에서 틈틈이 손대온 현대판 「춘화」를 발표, 미술애호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씨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관훈동 가나화랑(02―733―4545)에는 수백호 크기의 대작 여러 점을 포함, 40여점의 신작들이 걸려 관람객을 맞는다.
「생활속의 중도(中道)」라는 다소 철학적 명제가 붙어 있는 이들 작품은 그림 표면이 거친 질감을 주는데다 기존 한국화의 번짐기법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길고 가는 선을 최대한 살려 제작됐다. 따라서 언뜻 보기에도 칙칙한 분위기의 고분벽화처럼 느껴진다.
이씨는 『바위위에 새겨진 마애불상의 둔탁하면서도 거친 선이 우리 회화의 원형이라는 생각에 이를 응용해 그림을 제작했다』면서 『벽화의 우툴두툴한 질감을 살리기 위해 한지를 짓이겨 그위에 그림을 그렸다』고 작업과정을 소개했다.
전체적으로 낡고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이씨의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동차 텔레비전 전화 술병 등 현대사회를 나타내는 「상징」들이 그림속에 가득차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인기가수 박미경이 무대위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그림도 있으며 집안에서 남녀가 술을 마시거나 서로 포옹하는 장면도 들어있다.
그는 이에 대해 『평범한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현대판 풍속도』라면서 『전체 주제인 「생활속의 중도」는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찾는다는 의미』라고 밝힌다.
남녀의 섹스를 주제로 그린 이른바 「춘화」도 16점 출품됐다. 과거 조선시대 화가들이 그린 춘화도를 이따금 인사동 고미술점 등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이처럼 현대작가가 제작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가로 세로 10여㎝ 크기로 옛 화첩처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이들 그림은 남녀간의 섹스 장면을 중심으로 여러 상징적인 기호들을 배합, 제작됐다. 각 그림에는 「색즉시공(色卽是空)」(유형의 만물은 결국 빈 것이라는 뜻) 등의 화두가 들어있다.
『성문제는 예술가들의 전통적인 소재가 아닙니까. 인간을 하나의 물질로 파악하고 그안에서 이뤄지는 자연의 섭리를 묘사했습니다. 화가로서 한번 시도해 본 것이지요』
중국이나 인도 등 동양미술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 그는 이번 전시회가 끝난 후 인도기행을 계획중이다. 전시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