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우리가 이 사회로부터 받은 어떤 상처와 모욕을 치유할 공간을 찾는다면 그곳은 가정이라는 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그 가정 안에서 진정한 소통의 영역을 발견하지 못할 때 그 공간은 오히려 지옥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사회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근대화에 의해 가능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지만 근대화란 모든 순결한 원형을 너무나 빨리 변질시키는 일종의 폭력이다. 그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은 가정 안에서 위로받고 싶어 하지만 가정 역시 사회의 냉혹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운 순결한 공간은 아니다. 가정도 그 사회관계의 일부이자 기초라는 것은 달리 부정될 수 없다.
지세현의 「아내의 겨울」은 질곡의 한국근대사와 급속한 근대화의 물결 속에 내던져져 난파한 한 가족의 이야기다. 나이 45세가 된 중년의 아내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자신의 삶을 반추한다. 가난한 남자를 선택한 그는 가족을 위해 온몸을 던져야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고단한 삶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남편은 사막으로 해외근무를 나가고 아내는 남편없이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절대적 궁핍에서 탈출했지만 그 대가로 가족은 소중한 유대감을 잃게 된다. 부부간, 세대간의 몰이해는 가족 구성원들을 고통으로 몰아가고 이 와중에서 시한부의 삶을 선고받은 아내는 죽어간다. 홀로 남은 가장은 아내의 죽음, 아들의 퇴학, 딸의 가출이라는 참담한 상황에 직면한다.
나는 이 소설의 미학적 완성도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이 자리가 이 소설의 문학성을 가리는 자리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최근 「아버지」 신드롬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이 이야기의 문화적 계기를 생각할 수 있다.
자기 가족의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위해 생애를 바친 근대화의 주역인 기성세대는 그 희생에 자식들이 보답해주지 못할 때 참담한 공허와 절망을 경험하게 된다. 신세대 역시 부모세대의 희생과 강요된 가치가 부담스럽기만 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한국의 모든 가정은 불행하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불우하다. 한국사회에서 어머니의 운명이란 원죄와 같다. 그 불행은 어디에서 발원하는가. 불행의 기원은 역사와 제도 안에 있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는, 그래서 타인들의 지옥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내부에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려는 의지는 세상의 불행과 억압을 줄이는 가장 사소한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지세현 지음/한마음사 펴냄
이광호(서울예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