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 지음/강 펴냄
성석제씨는 「재미나는 인생」(강펴냄)에다 40편의 소설을 실어 놓고 있다. 2백쪽도 채 못되는 분량에다 40편을 담아도 되는 것일까. 된다 하고 밀어붙이는 것이 성씨의 소설이다. 이러한 짧은 소설은 기존의 콩트나 엽편소설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그의 저력이자 방법론이다. 그가 이 소설 모음을 창작집이나 소설집이라 하지 않고 「성석제소설」이라 한 것도 이 방법론에서 말미암았다. 40편이 그대로 단 한 편의 작품인 것이다.
그렇다면 성석제소설을 가능케 한 저력이자 방법론은 무엇인가. 「재미있음」에 그 노하우가 깃들여 있다. 어떻게 하면 그 굉장한 「재미있음」이 창출되는가. 일목요연한 해답이 주어진다. 「거짓말」이 그것. 전세계거짓말쟁이협회 서기장이라 자처한 그는 거짓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거짓이 되는 그 날을 위해 목숨을 다하겠다고 맹세한다. 그 방법론이 8백71가지나 된다고 허풍을 쳤다. 이 허풍이 허풍일 수 없음이야말로 그의 방법론인데 곧 「기억」이 그것. 진정한 거짓말쟁이란 자신이 그것을 진실로 믿을 수 있을 때까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법. 기억력이 절대로 필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지금 기억력을 담보로 하여 컴퓨터 앞이나 골방에 앉아 스스로가 지어낸 거짓말을 두고 참말이 되라고 외쳐대고 있다. 그 외침의 일관성 천재성이 드디어 빛을 뿜어내기에 이른 것에 그의 시대적 의의가 있다.
오늘의 현실이 결정 불가능성의 원리 위에 있다는 점이 그 하나. 「모든 희랍인은 거짓말쟁이라고 한 희랍인이 말했다」로 이 사정이 요약된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결정불가능성도 그 뿌리는 같다. 「글쓰는 나」와 그것을 「읽는 나」의 결정 불가능성도 그 뿌리는 같다. 집이 비어 있는 동안 살며시 물독에서 나와 하루 열장 스무장의 원고를 입력해 놓고 사라지는 우렁각시와 그는 벌써 동거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른 하나는, 이 점이 중요하거니와 그동안 이 나라 소설계에 군림했던 대하 장편물의 끝마무리의 한 가지 징후에 해당된다는 점. 거짓말에 대한 집요한 사유가 재미와는 관계없이 무엇보다 먼저 소설 해체작업임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글쓰기의 시대적 의의가 뚜렷해진다.
진실이란 핑계로 아직도 돈키호테의 저자가 좋아한 제 아비 어미 가족에 대한 것을 다룬 이야기가 판을 치고 있는 이 나라 소설계에 돌연 나타난 한 마리 까마귀라고 작가 성씨를 규정하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이다. 그 까마귀가 흰 놈인지 검은 놈인지 아직 모른다 할지라도.
김윤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