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박신양,영화 「쁘아종」서 정상 날개짓

  • 입력 1997년 3월 27일 07시 40분


[박원재 기자] 젊은 승려의 파행적 구도행각을 그린 실험영화 「유리」가 완성된 것은 지난해 3월. 눈썰미있는 충무로 기획자들은 낯선 얼굴의 남자배우를 주목했다. 삭발 전라(全裸), 이글거리는 눈빛…. 한달뒤 그는 MBC 드라마 「사과꽃 향기」 촬영현장에 쭈뼛거리며 나타났다. 톱탤런트 김혜수가 「보호자」로 나섰다. 김혜수는 친분이 있는 기자들에게 「국제적 스타」가 될 재목이라며 입이 마르도록 이 배우를 칭찬했다. 박신양(30). 1년이 지난 지금 그는 훌쩍 커버렸다. TV와 스크린을 부지런히 넘나들며 마음 깊은 곳 품어둔 연기 정열을 쏟아내고 있다. 『저는 연기를 팔지 않습니다. 작품속 인물을 통해 관객이나 시청자와 대화를 나눌 뿐이지요』 그의 말맺음은 단호하면서도 진지하다. 괜스레 잘난 체 「폼잡는」 치기로 보이지 않는다. 박신양은 MBC 주말드라마 「사랑한다면」의 동휘역으로 대중과의 교감 가능성을 확인했다. 김혜수의 대학(동국대 연극영화과) 선배라는 꼬리표도 이제는 거추장스럽다. 다음달초 선보이는 영화 「쁘아종」(박재호 감독)은 박신양이 처음으로 출연하는 상업영화. 사회 중심부에서 밀려난 젊은이의 고독과 상실감을 감각적 터치로 묘사한 작품. 수십여편 출연섭외를 받은 박신양이 유독 「쁘아종」을 선택한 이유가 흥미롭다. 『3년간의 러시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만난 서울사람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너무 공격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대열에서 한번이라도 뒤처지면 그걸로 끝, 낙오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웠지요』 대학졸업후 러시아 셰프킨연극대에서 연기이론과 실기를 심도있게 공부한 그는 『「쁘아종」에서 그려진 캐릭터의 순수함과 주제의식이 마음에 와닿았다』고 덧붙였다. 「쁘아종」은 절망에 빠진 현대인이 섹스를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활용한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작품. 박신양과 상대역인 신인 이수아의 농도짙은 러브신이 세차례 등장한다. 연기의 「의미」를 추구해 온 박신양으로서는 곤혹스러운 대목. 목소리가 높아진다. 『극 흐름상 정사장면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쁘아종」에서는 정도가 지나쳤다는 게 솔직한 생각입니다. 상업성만을 염두에 둔 러브신은 관객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없거든요』 그는 『공들여 찍은 러브신이 한낱 눈요깃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배우로서 참기 힘든 모욕』이라며 『극중 배역인 택시기사 정일을 현실감있는 인물로 표현해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기 밑천이 바닥났다는 판단이 들면 미련없이 짐을 꾸려 모스크바로 떠날 계획』이라고 다짐했다. [박신양 매력포인트] ▼꾸미기따라 「천의 얼굴」성격파배우 『재목』▼ 최근 한 여성잡지가 20대 미혼여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박신양은 쟁쟁한 미남 경쟁자들을 제치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에 올랐다. 뿔테 안경에 어눌한 말투, 다소 야윈듯한 얼굴. 잘 생기기는커녕 배우치고는 평범한 축에 끼는 박신양이 유행에 민감한 동년배 여성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한다면」에서 맡고 있는 배역 덕택이 크겠지요. 착하고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지극히 자상하지만 나름대로 강한 의지를 지닌 동휘의 이미지가 여성들을 사로잡은 모양입니다』 그의 매력은 귀족적 분위기의 차인표나 조각으로 깎아낸 듯 잘 생긴 이정재, 강렬한 카리스마로 한몫 본 최민수류(類)와는 다른 차원이라는 게 영화계의 분석. 「쁘아종」의 박재호 감독은 『첫 인상은 밋밋하지만 꾸미기에 따라서는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마스크』라며 『몸 동작이 워낙 날렵해 액션 연기도 소화해낼 자질이 있다』고 평했다. 발성 표정 등 연기 테크닉은 물론 무용 기계체조 등 「잡기」를 체계적으로 배워둔 것도 배우 박신양의 소중한 자산. 대학시절 단편영화 「가변차선」에서 함께 작업한 김혜수는 『역할이 크든 작든 준비를 철저히 하는 스타일』이라며 『연기 순발력도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계 일각에서는 박신양을 우리 영화계에서 성격파 배우로 자리를 굳힌 문성근 한석규와 같은 계열 연기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는 『존경하는 선배와 비슷한 인상으로 비치는 건 개인적으로 영광』이라면서도 『3∼5년쯤 뒤에는 독창적인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의 당면 목표는 「메시지를 전하는 배우」로 기억되는 것. 「쁘아종」이후 어떤 메시지를 선택할지 주목해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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