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기자] 최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집을 출반한 바이올리니스트 이다 헨델의 이야기는 프랑스영화 「디바」를 연상시킨다.
「디바」에서는 녹음을 극도로 꺼리는 소프라노, 그를 숭배한 나머지 공연을 몰래 녹음한 남자주인공, 녹음테이프를 입수해 「해적출반」하려는 사람들이 쫓고 쫓기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올 73세를 맞은 이다 헨델도 녹음을 꺼려온 음악가중 하나. 『녹음된 음반은 실제연주의 느낌을 전하지 못한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던 그가 음반을 내놓은 것은 그의 공연실황이 「해적음반」이 되어 시중에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숙한 연주가 내 이름을 달고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오히려 연주를 부끄럽지 않게 잘 해서 내놓고 싶었어요』 녹음에 즈음한 헨델의 말이다.
테스터먼트사에서 발매된 헨델의 음반은 「컬트」바이올리니스트로 불리는 헨델의 숨은 면모를 새삼 일깨워준다.
듣는 사람은 우선 그 느린 템포에 경악하게 된다. 전집 6곡의 총 수록시간은 2시간40분. 반복기호를 모두 충실히 재현한 탓도 있지만 셰링의 연주를 비롯한 이 곡의 평균연주속도가 2시간10분 정도인 것과 비교할 때 기록적일 만큼 느린 속도다.
연주가가 택하는 템포란 작품이 요구하는 정신적 무게를 가장 잘 견딜만한 수준에서 결정된다.
만일 연주자체의 긴장을 떨어뜨린채 템포의 밀도만 낮아진다면 곡의 견고함을 유지하지 못해 작곡가가 쌓아올린 건축적 설계를 무너뜨리기 쉽다. 여기에 헨델이 사용한 버팀목은 힘있는 활긋기와 따스함이 넘치는 음색. 칼끝같은 기교나 날카로운 표정전환 대신 깊고 풍요한 표정이 느린 템포속에 가득히 흐르고 있다는 평이다.
이 음반이 최신 디지털 녹음기술 대신 아날로그 녹음기로 녹음된 점도 눈길을 끈다. 아날로그 녹음은 아날로그 재생매체인 LP로 재생될 때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D와 LP로 동시발매된 이번 음반중 국내 수입된 LP에는 연주가 자필사인이 들어있다.
한편 이다 헨델처럼 녹음을 기피했던 연주자로는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 등이 알려져 있다. 특이한 것은 첼리비다케의 경우 영상을 함께 기록하는데는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
그가 연주한 브루크너의 교향곡들은 영상물로 남아 이 거장의 풍모를 알려준다. 헨델도 비슷한 입장이었던지 우리나라에서도 케이블TV를 통해 그의 다큐멘터리가 소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