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일부 고고학자들 사이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중국 길림성 집안의 「장천(長川)1호고분 벽화 도굴설」이 사실로 확인되자 국내 학계는 놀라움과 함께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장천1호고분 벽화(5세기 중엽∼6세기중엽)는 고구려의 회화양식뿐만 아니라 당시 생활상과 정신세계 및 복식사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해 12월 새로 지은 건물로 이전 개관하면서 장천1호고분을 실물 크기로 재현, 전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고분의 중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장천1호고분 벽화의 가장 큰 특징은 사신도(四神圖)수렵도(狩獵圖) 무용도(舞踊圖) 등 개별 고분벽화에 나타나는 다양한 모습을 하나의 벽화안에 모두 담고 있다는 점. 전실(前室)의 벽과 천장엔 무덤 주인공의 생전 생활상과 사후세계 삶의 모습을 비롯해 수렵도 사신도 예불도(禮佛圖) 등 여러 형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만도 1백여명에 이른다. 장천1호고분은 이같은 다양한 벽화를 통해 당시 생활풍습 종교 사상 및 고구려인의 기상을 잘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호고분과 함께 도굴당한 2호고분은 국내에는 그 존재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분. 이 고분엔 「왕(王)」자를 가로 25열, 세로 23열로 촘촘히 그린 벽화, 시중드는 남녀 모습을 그린 벽화 등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천 1, 2호고분 벽화 도굴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 학계는 다른 고분의 벽화도 도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이에 대한 조사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국에 있는 우리 문화재의 훼손 문제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인 집안지역은 고분 1만2천기 등 고구려 유적이 집중 분포돼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중국당국의 방치와 우리의 무관심으로 인해 도굴과 파괴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국내성 장군총 호태왕릉 등이 그 대표적 예. 국내성은 폐허가 된지 이미 오래고 장군총도 장대석(長臺石·고분을 이루는 바깥쪽의 대형 화강암)의 일부가 하중을 못이겨 제 위치를 벗어나고 관광용 철제계단을 마련해 훼손을 부채질하고 있다. 호태왕릉 역시 봉분(封墳)이 무너진채 방치돼 있다.
집안지역 고구려 유적 훼손이 이처럼 심각한 상태임에도 국내 학자들이 독자적으로 연구조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집안지역이 중국의 영토라는 지리적 여건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이 이 지역 문화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를 중국측이 꺼리며 견제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최선의 대책은 정부차원의 韓中(한중) 공동연구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서울대 安輝濬(안휘준·미술사)교수는 『중국 소재 고구려 유적의 훼손을 막기 위해 정부차원에서 중국과 문화협력에 관한협약 등을 맺어 공동으로 연구 보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任孝宰(임효재·고고학)교수도 정부차원의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 정부가 경비를 제공할 경우 중국측이 공동조사연구에 응할 것이란 암시를 받은 바 있다』고 말했다.
〈이광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