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슨 포드가 연기하는 톰 오미아라는 뉴욕 브루클린의 경찰생활 23년 동안 방아쇠를 고작 네번, 그것도 위협용으로 당겼을 뿐이다. 험한 지역의 경찰이지만 그는 세딸의 아버지로서 직업윤리에 철저한 말 그대로 민중의 지팡이다.
브래드 피트가 맡은 역은 프랭키 맥과이어, 어린 시절 영국 비밀경찰에 의해 아버지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그는 북아일랜드 무장독립단체 IRA의 단원이 되어 수많은 테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기회의 땅」 미국의 보통경찰과 「이해할 수 없는 나라」 아일랜드의 테러리스트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수입사의 선전 팜플렛은 「금세기 최고 배우의 파격적 격돌 그리고 이성을 거부하는 초특급 액션무비」라고 흥분하지만 영화광고는 정치인의 연설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법.
「데블스 오운」은 이성을 거부하는 액션영화이기는커녕 이성 그 자체로 승부하는 아주 특이한 할리우드 메이저영화다.
몇몇 잔혹한 장면 때문인지 영화의 미국등급은 R이지만 격렬한 액션이나 장삿속의 베드신은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클루트」와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과 같은 수작필름으로 빛나는 70년대를 보냈지만 최근에는 믿을만한 메이저의 장인으로 만족해왔던 앨런 제이 파큘라 감독은 이제 칠순을 바라보면서 다시 한번 초기의 니힐리즘과 아이러니의 연출세계로 복귀하고 있다.
영화는 황당한 영웅주의나 섣부른 해피엔딩을 거부한다. 그 대신에 감독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어둡고 혼란한 세상을 지배하는 악마의 논리와 씨름한다. 「대부」의 촬영감독 고든 윌리스의 카메라에 힘입은 영화의 컬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고 영화의 리듬은 세상의 깊은 속내를 보여주는 듯 침착하지만 예리하다.
하지만 영화는 7천만달러의 제작비나 스타시스템에 대한 부담때문인지 때때로 갈길을 당당하게 가지 못하고 갈지(之)자 걸음을 한다. 그러나 아카데미상에서조차 따돌림 당할 정도로 할리우드 영화의 지능지수가 의심되는 요즈음, 「데블스 오운」은 폭력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의외의 문제작이다. 세상에 대한 비관주의에 승부를 거는 영화의 주제는 미국영화의 이단시대라 불리는 50년대 필름 누아르를 연상시킬 정도다.
강한섭(서울예전 영화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