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이는 듯, 두드리는듯 나지막한 첼로의 선율속에 열대의 끈적함이 묻어나온다. 그 속으로 이어지는 소프라노의 고요한 노랫가락. 어떤 인디오 처녀가 남모르는 열정을 주체못해 은밀한 노랫가락으로 풀어내는 것일까.
책 가운데의 한장만 펴보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빌라로보스의 작품 「브라질풍의 바흐」를 안다는 사람도 방송 음반 등을 통해 「제5번」중 「아리아와 칸틸레나」만 감상해본 경우가 대부분. 그러나 「브라질풍의 바흐」는 전 9곡으로 이루어진 큰 규모의 곡집이다.
첼로의 피치카토(퉁겨 연주하는 기법)와 소프라노 독창의 명선율로 우리귀에 낯익은 작품이 바로 「제5번」이다. 전9곡의 작품이 함께 소개되기 힘든 이유는 각각의 악기편성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 마이클 틸슨 토머스가 뉴 월드 교향악단을 지휘해 내놓은 새음반 「알마 브라질레이라」는 「브라질풍의 바흐」중 4, 5, 7, 9번을 수록한 앨범. 남미의 거장 빌라로보스의 풍모를 지금까지보다 한층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해준다.
브라질 출신 작곡가 빌라로보스(1887∼1959)는 평생 바흐를 숭배했으며 바흐의 심오함이 그의 「민속성」에서 나온다는 특이한 주장을 펼친 인물. 바흐의 정신을 「지금 여기」 재현하기로 마음먹은 그의 노력은 남미의 민속선율과 바흐풍의 구조적 치밀함을 결합한 「브라질풍의 바흐」속에 집약되어 있다.
5번의 친근한 선율 외에도 삼바리듬이 풍성히 펼쳐지는 4번의 「아리아」, 리드미컬함과 대위법적 수법이 교묘하게 결합된 7번의 「지그」는 이국적 냄새와 감각적인 재미로 선뜻 다가온다.
지휘자 마이클 틸슨 토머스는 리듬의 속성을 잘 꿰뚫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만큼 음반속에서 활발히 살아숨쉬는 남미의 풍성한 리듬요소를 맛보는 것도 각별한 재미. 뉴월드 심포니는 미국 마이애미를 근거지로 87년 창단된 젊은 악단으로 작년 이 악단의 오디션에 플루티스트 윤혜리가 수석합격해 우리의 귀에도 낯설지 않다.
5번의 소프라노 솔로는 최근 모차르트 아리아집으로 주가를 올린 르네 플레밍이 맡았다.
모차르트 아리아에서는 그의 유연한 음색이 「포근하다」는 주장과 「너무 무거운 것이 아니냐」는 주장사이에 논쟁거리가 됐지만 빌라로보스 작품에서 습기를 약간 머금은 남미의 원초성을 전달하는데 그의 음성은 의심할 필요 없이 적역이다.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