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빨리 일어나세요. 비가 안와요』
막내 相彬(상빈·일산 율곡초등교2)이가 눈을 뜨자마자 설레는 목소리로 아빠를 깨운다. 이 바람에 소설가 李舜源(이순원·40)씨 가족은 휴일치고는 드물게 일찍 눈을 떴다.
식목일 아침에 아빠랑 같이 나무를 심자는 약속 때문에 상빈이는 전날부터 궂은 날씨가 밤새 걱정이 된 모양이다.
아빠는 相佑(상우·일산 신일중2) 상빈이를 데리고 집근처 화훼단지에 갔다.
『오늘은 너희들이 심고 싶은 나무를 직접 골라라』
이씨는 문단에서 「별종」으로 통할만큼 아버지 노릇에 충실한 가장. 한참만에 돌아온 아이들의 손에는 키보다 더 큰 감나무와 사과나무가 한그루씩 들려 있다.
『아이들은 꾸밈이 없어요. 상우는 감을, 상빈이는 사과를 유난히 좋아하거든요』
거실창문으로 내다보이는 곳에 나무를 심기로 했다.
아빠보다 먼저 큰삽을 차지한 상빈이는 막상 땅을 팔 때가 되자 슬그머니 모종삽으로 바꿔든다. 상우는 보물단지 모시듯 감나무를 들고 아빠 옆에 섰다. 아빠가 구덩이를 파자 상우는 조심스레 감나무를 구덩이 속에 넣는다.
『아빠, 언제 감이 열려요?』 『내년 가을이면 단감을 맛볼 수 있을거야. 네가 책임지고 잘 가꾸어야 한다』
이씨는 늘 아이들에게 나무의 소중함을 가르친다. 자연과 친해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
『너희들만할 때 아빠는 매일 나무랑 소랑 같이 살았단다. 학교갔다오면 뒷산에 가서 소먹이는 게 일이었지』 『소먹이는 게 뭔데요?』
곤충 동물 꽃 등 자연생태 비디오만 1백여개를 사주고 베란다에는 70여개의 화분을 가꾸고 있지만 경험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의 골은 깊다. 아빠는 소먹이는 게 뭔지부터 꼼꼼히 설명한다.
지난해 봄 이씨는 상우와 함께 대관령꼭대기에서 산자락의 고향마을(강릉시 성산면 이촌리)까지 꼬박 60리를 걸었다.
여기서 나눈 대화를 「아들과 함께 걷는 길」(해냄 간)에 담아 펴내기도 했다.
아빠는 소설 속의 얘기를 다시 한번 들려준다.
『집을 만드는데 쓰는 나무, 책을 만드는데 쓰는 나무, 바람막는데 쓰는 나무…. 나무에 저마다 쓰임새가 있듯이 사람도 저마다 쓰임새가 있단다. 감나무 사과나무가 자라서 맛있는 열매를 맺듯이 너희들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거라』
상빈이는 흙장난을 하느라 열심이고 상우는 아빠의 말을 되새기느라 진지하다.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가끔씩 회초리를 들지만 아빠는 늘 너희들을 사랑한단다』
엷은 안개비가 이들 부자를 축복처럼 감쌌다.
〈윤종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