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1894년 농민전쟁연구」

  • 입력 1997년 4월 8일 08시 01분


「1894년 농민전쟁연구」는 내 전공과 무관한 방대한 역사연구 논문집이니 나로서는 하고 많은 타분야 책의 하나일 따름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의 한 성실한 독자였고 그 독서를 통하여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하나의 사건을 역사적으로 탐구할 때 거기에 고려되어야만 할 제반사항을 집요하고 치밀하게 다루었다. 그리고 그렇게 규명된 역사적 진실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정직하고 단호하게 묻는 학문적 자세가 우리를 차라리 숙연케 한다. 이 책에 대한 나의 관심과 독서는 내가 고등학교 때 「동학란」이라고 배웠고 훗날에는 「동학농민혁명」이라고 부른 이 사건을 「1894년 농민전쟁」이라고 고쳐부른 그 역사적 시각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나의 독서가 정확한 것이라면 지난 10년간 40여명의 신진학자들에 의해 연구 집필된 이 체계적인 연구논문집은 바로 이 명칭의 정당성을 변증하는데 그 논의의 초점을 모으고 있다. 연구자들은 이 사회적 변란의 주체가 분명 농민이었고 이들의 투쟁 목표는 제폭구민(除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는 기치가 말해주듯 폭정으로부터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보위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함에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들에게 있어 동학이란 이런 항쟁을 수행하는데 유리한 한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연구자들은 이 사건은 19세기에 일관되게 진행된 역사과정, 즉 봉건사회가 해체되고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시기에 사실상 마지막으로 아래로부터 일어난 몸부림이었음을 강조한다. 1894년의 농민전쟁은 그 진행과정을 일지를 쓰듯 치밀하게 다루고 그것이 정치 경제에 끼친 영향을 면밀히 분석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중국에서 일어난 농민전쟁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를 살피는 세계사적 시각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는 우리의 일거수일투족도 1백년 뒤에는 건강한 눈의 역사가에 의해 이처럼 냉정한 평가가 내려진다는 역사의 경종이 서려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연구성과보다도 이 책의 더 큰 의의는 지금부터 10년전, 아무도 농민전쟁 1백주년을 생각지 못하고 있을 때 가난한 역사학자들이 그 흔한 학술지원금을 1원도 못 받으면서 끝내는 이 역사적 사업을 국가를 대신하여 완수하는 그 뜨거운 학문적 열정과 위대한 고집의 결실이라는 점이다. 한국역사연구회 지음(역사비평사·전5권) 유홍준<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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