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호동에 사는 주부 김모씨(32)는 최근 자신에게 「못된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김씨는 지난해 가을부터 1주일에 두세번 동대문시장에 갔다. 한번 갈 때마다 네살배기 아들과 자신의 옷을 합쳐 서너 벌씩 사온다. 한달 평균 70여만원의 옷값이 나간 것을 셈하고는 새삼스레 놀랐다. 이렇게 산 옷은 대부분 한두번 입고 옷장에 처박아 놓는다. 그는 『디자인과 색상이 유명브랜드의 옷과 비슷한데도 가격은 3분의 1 이하인 상품을 보면 안사고 배길 수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만 이용하다가 최근 경기 한파 탓으로 비교적 싼 상가 쪽으로 발길을 돌린 주부들 중에 1주일에 몇 번씩 재래시장이나 대형할인매장 등에 찾아가 돌아다니다 싼 물건을 보면 덥석 사버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상품의 품질과 가격을 비교해 아주 싸다고 생각되면 몇개씩 사야 직성이 풀린다는 주부도 있다. 「저가충동구매증」인 셈이다.
저가충동구매증은 쇼핑중독증 환자(쇼퍼홀릭·Shopaholic)와는 비슷한 점도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쇼핑중독증은 불안과 우울 등을 충동구매를 통해 해결하려는 것. 영국 옥스퍼드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쇼핑중독증에 걸린 주부들은 △일에만 몰두하는 남편에게 복수하거나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고가의 물건을 마구 산다. 저가충동구매증에 걸린 주부들은 알뜰 쇼핑을 하려 나섰다가 결과적으로는 낭비하게 된다.
서울 동대문 일대와 남대문시장의 대형의류상가는 이런 주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신평화시장의 한 상인은 『일부 고객들은 1주일에 두세번씩 물건을 사러 온다』고 말했다.
대형할인매장에서도 이런 경향이 나타난다. 서울 그랜드마트 신촌점 데코매장의 직원 박정숙씨(32)는 『고객의 4분의 1 정도가 1주일에 두세번 매장을 방문하며 대부분은 그때마다 15만원 어치는 사간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에 사는 주부 신모씨(29)는 『괜찮은 단품을 싸게 구입하는 맛에 매주 두번씩 갈 때마다 10만원 어치 이상 사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창고형 할인매장의 경우 회원카드를 소지한 주부를 통해 이웃이 함께 물건을 사면서 필요없는 물건을 사기도 한다. 회원카드를 소지한 주부는 이웃 주민들의 물건을 사주는 재미에 빠져서 덩달아 필요없는 물건을 사기도 한다.
이화여대 정순희교수(소비자인간발달학)는 『중산층 여성들은 고가의 물건을 구매할 때 심리적으로 죄책감을 갖게 되고 불경기땐 정도가 심하다. 싼 물건을 사는 것이 마음 편해 계속하다 보면 비싼 물건을 살 때보다 지출이 오히려 더 많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