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자 김동주씨 「설화문학총서」 펴내

  • 입력 1997년 4월 15일 09시 32분


「여름이 오니 우레소리가 가득하고 가을에 이르니 만물이 익는구나」(夏至雷聲滿 秋來萬物熟). 나이 일곱살때부터 「젊어 큰 이름을 떨치고 나이 들어서는 천하의 재물을 취하겠다」고 한시를 지어 어른들을 경악케 했던 한학자 김동주씨(55·한국정신문화연구원). 오직 한길, 한학에만 정진해온 그가 10년의 각고끝에 「설화문학총서」(5권)를 내놓았다. 우리 설화의 원전을 꼼꼼히 정리한뒤 문학적 향기를 녹여 우리말로 풀었다. 설화문학은 흔히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본능을 가장 자연스럽고 순수한 형태로 담고 있다고 한다. 우리 문화와 정서의 뿌리가 닿아있는 이야기의 원형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지금까지 설화문학은 한낱 「야담」으로 저잣거리를 굴러다니는 저속한 읽을거리 정도로 치부돼 왔다. 김씨는 『설화집을 대할 때마다 우리 전통문화의 보고가 난해한 한문더미에 파묻혀 있는것 같아 안타까웠다』며 『손자들에게 들려줄 이야깃거리가 없다는 집안 어른들의 말씀도 많았다』고 집필동기를 밝혔다. 13대 종손인 김씨는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한문을 익히기 시작했다. 철들어서는 이승만 정권의 한문박해 정책에 반발, 일부러 신학문을 멀리하고 한학만을 고집했다. 나이 열아홉에는 인근에서 스승을 찾을 수 없었다. 멀리 경남합천(권용현) 전남구례(김규태) 전북임실(이기완)까지 명망높은 한학자들을 찾아 다녔다. 그가 저작과정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모두 57종에 달하는 설화집 이본(異本)을 비교해 일목요연하게 원전을 정리한 것. 「대동야승」 「패림」 같은 야사집을 뒤져 설화를 채취하기도 했다. 고본(稿本)이 아닌 필사본으로 전해오는 설화집은 오자 탈자 낙구(落句)가 많아 어지간한 정성과 한학에 대한 조예 없이는 원전정리가 불가능하다는게 학계의 평가다. 또 서로 등장인물이나 배경, 심지어 이야기의 줄거리마저 달라 어떤 것을 정본으로 선택해야 하는지도 어려운 과제. 「매화는 피리소리에 취하여 향기롭구나」편에 실린 「한명회와 선천좌수의 딸」은 오히려 대본을 택하기가 수월했던 예. 그는 『대본을 선택할 때 작품의 문학성을 으뜸으로 삼았다』며 『양사언의 어머니 이야기는 이본마다 벼슬도 다르고 무대도 다르지만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기문총화」를 대본으로 삼았다』고 예를 들었다. 그는 각권마다 대본의 한자원전을 별도로 싣고 여기에 참조한 이본들과 서로 다른 내용까지 함께 수록했다. 김씨는 올해로 17년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몸담고 있다. 정문연의 역작으로 꼽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편찬할 당시 「단 한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꼿꼿한 성격 때문에 승강이가 잦았다. 내로라하는 대학교수들의 저술에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 그는 민족문화추진회에 있을 때에는 직원들을 밤늦게 혹사시켜 벌어들인 번역료로 도서와 자료를 구입하는 바람에 원성을 사기도 했다고 한다. 책을 출간한 「전통문화연구회」의 이계황회장은 『앞서 설화문학에 손을 댄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힘들고 더디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제야 선인들의 숨결과 체취가 밴 설화문학이 제모습을 찾았다』고 기뻐했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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