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드라이랜드]美이스턴시에라-데스밸리

  • 입력 1997년 4월 17일 07시 55분


사막과 다름없는 드라이랜드(Dryland). 생각만해도 갈증이 인다. 그 죽음의 땅. 생기라고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 황량함에 기가 질린다. 그러나 이 한가운데 두 발을 딛고 서보라. 황량함 보다는 그 순수함에 마음을 빼앗긴다. 절망감 보다는 생에 대한 열망이 앞선다. 왜 그럴까. 태고적 고요, 원시적 적막에 사로 잡힌 그 순수의 대지. 죽음만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던 그 땅 아래서도 살아 숨쉬는 위대한 생명의 신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마여행은 미국서부 모하비사막 근방의 데스밸리와 북으로 이어지는 「이스턴 시에라」, 호주의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 이스라엘의 사해등 드라이랜드로 안내한다. 기온도 섭씨 42도(5월중순). 그러나 땅바닥은 그보다 훨씬 뜨겁게 달아 올랐다. 그 땡볕에는 청바지도 역부족이다. 차에 들어가 에어컨 바람에 식혀도 청바지를 달군 폭염은 가실줄 모른다. 여기는 데스밸리 드라이랜드에 있는 「배드워터」(Badwater). 계속된 단층작용으로 꺼진 땅이 지상 최저지대(해발 -86m)로 변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법. 그래서 주변의 빗물이 모두 여기 고인다. 비만 오면 호수가 된다. 그러나 그 호수를 보기는 쉽지 않다. 작기도 하려니와 고이는 즉시 강렬한 태양에 증발되기 때문이다. 이러기를 수만년. 남은 것이라고는 물속에 함유됐던 광물질들뿐이다. 그중 가장 많은 나트륨화합물성분 때문에 배드워터는 소금 천지로 변했다. 거대한 파나민트산맥을 배경으로 광대하게 펼쳐진 배드워터. 마침 이곳을 찾았을 때는 그 주변에서 소금물 웅덩이라도 볼 수 있었다. 사막에서의 소금물. 절망감만 가중시키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사막 한가운데 소금물 웅덩이에도 생명체가 살아 있다고 한다. 그 자연의 신비에 놀라 눈을 들었다. 드높은 파나민트산맥을 배경으로 지평선을 이루고 있는 배드워터가 있었다. 그러나 맨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현란한 복사열의 일렁임과 지표면의 소금기에서 발산하는 눈부신 반사광 때문이었다. 사막의 아름다움을 찬탄하는 여행자의 호사스러움은 잠시 접어두자. 수백날을 서쪽으로 달려 여기에 이른 서부개척기 오리건 포장마차 행렬이 배드워터의 소금물을 마시고 겪었을 절망감과 회한 앞에서. 배드워터를 동쪽에서 성벽처럼 두른 산맥은 블랙마운틴스. 이중 배드워터가 잘 조망되는 곳(해발 1,669m)에 「단테스 뷰」(Dante’s View)라는 전망대가 있다. 지옥의 바닥까지 헤아렸던 단테의 혜안을 염두에 둔 것일까. 바닥을 드러내고도 저렇듯 깨끗하고 순수한 배드워터를 보면서 내 자신에게 되묻는다. 감춰진 내 마음속 바닥도 저만큼 깨끗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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