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어미를 평가할 수 있는 잣대는 없다』
5월 한달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될 연극 「어미」를 쓰고 연출하는 오태석씨의 말. 어미가 제 새끼를 위하는 일의 옳고 그름을 세상 기준으로 따질 수 없다는 의미다.
한국인의 원형을 가장 한국적으로 그려온 오씨의 이 작품에서 주인공 어미역은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하는 재일교포3세 배우 이여선(李麗仙·55)씨. 한국말 대사 아래 일본어로 발음과 의미를 적어가며 연습했다는 그는 『일본에서 자라 일본말로 연기를 해왔지만 나는 한국식 어머니다. 자식이 무슨 짓을 해도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어미』라고 말했다.
이씨가 연기하는 「어미」는 해녀. 열일곱살에 결혼해 나흘만에 배타러 나간 남편을 잃고 열여덟살에 아들을 낳았다. 자맥질하러 나갈 때 기둥에다 매놓았던 아이는 해질 때면 기함을 해서 어미 젖도 못빨고 자랐다.
『그 아들이 군에서 휴가를 나오자 어미는 고기라도 사먹이고 싶어 규칙을 어기고 미역을 따다 벌을 받습니다. 나도 아들에게 맛있는 거 해먹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연기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요』
연극은 군에서 사고로 뇌를 다친 아들이 시도 때도 없이 「발정」해 발광하는 것으로 치닫는다. 이 작품에서 발정이란 유독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사회에 의해 다쳐야했던 어떤 「치명적 병」을 상징한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어미는 결국 자기 몸으로 아들을 받아들이는 「치유」의 의식을 치른 뒤 제 손으로 자식을 죽이는 충격적 결말로 마감한다. 자식의 아픔을 핥아주고 끌어안아야 할 사람은 이 땅의 어미임을 의미하는 대목이다.
지난달 말 입국, 목이 쉬도록 아들을 부르짖고 피눈물을 흘리는 모진 어미 역할을 연습해온 이씨는 『25년만에 고국에서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72년 남편이었던 연출가 가라주로 오(唐十郎)와 내한, 서강대에서 「두 도시 이야기」를 선보였던 것. 일본에서 「전위연극의 여왕」으로 이름나 있는 그는 「슬픈 창녀」 「벵골의 호랑이」 등에서 강인하고 용기있는 역할을 맡아왔다.
그는 『나를 지켜주는 어미가 있듯이 연극은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음을 관객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네텔 제작. 02―720―6157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