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부터 새로운 목소리를 가꾸어오느라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세계적 무대에서 거듭 인정받아 기쁩니다. 「오텔로」 첫 장면처럼 전쟁에 이긴 기분이에요』
테너 박치원씨가 모스크바의 두 주요 오페라극장을 정복했다. 93, 94년 볼쇼이극장에서 레온카발로의 오페라 「팔리아치」에 주인공 카니오역으로 출연해 갈채를 받았던 박씨는 이달초 스타니슬라프스키 극장에서 공연된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에도 주역으로 등장, 현지언론과 관객들의 격찬을 이끌어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극장은 보수적인 볼쇼이극장에 비해 연출 의상 등 혁신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모스크바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극장이다.
「에술타테(기뻐하라)…」. 박씨는 지난 7일 개막된 공연에서 큰 체격의 러시아인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성량과 무겁게 울리는 중후한 음성으로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박씨가 「테노레(테너)드라마티코」의 주요 역할인 오텔로역으로 세계무대에 서기까지는 남다른 곡절이 있었다.
「드라마티코」란 두터운 음색과 큰 성량을 가져 분노 열정 등을 연기하는데 적합한 목소리를 뜻하는 말. 70년대 국내 정상급 테너로 활동하던 박씨는 드라마티코의 목소리에 도전하다 78년 그만 목소리를 잃고 말았다.
신앙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한 그는 목소리를 되찾은 뒤 84년 이탈리아로 유학, 세계적 성악명교사 알도 프로티에게 88년까지 노래를 배웠다.
열망하던 드라마티코의 음색에 완전히 적응한 그는 스승 프로티로부터 『당신이 노래할 궁극적 배역은 오직 오텔로 하나』라는 격려를 받았다.
예전과 달리 쭉 앞으로 뻗으면서 단단한 공명을 가진 목소리로 변신한 것.
박씨는 귀국한 뒤 국내 오페라 무대를 위주로 차분히 명성을 높여 갔다.
특히 95년 공연계의 일대 화제로 떠올랐던 오페라 「안중근」에서 주역을 맡아 의지와 실천의 안중근상을 중후한 목소리로 완벽히 표현, 예전 그의 밝은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던 팬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스타니슬라프스키 공연에서 지휘를 맡은 블라디미르 폰킨은 『오늘날 가장 베르디 전통에 충실한 정통적인 「오텔로」를 들었다』고 박씨를 칭찬했다.
박씨는 5월 서울시립오페라단의 베르디곡 「맥베드」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6월 이후에는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무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유윤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