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더운 나라 인도, 그 남부에 타밀족이 산다. 발음에 주의해야 한다. 잘못하면 「때밀족」이 되니까. 유난히도 피부가 까만 이들은 누구인가. 그 수로 따진다면 결코 소수민족이랄 수 없다.
그리고 원래는 인도대륙의 주인이던 드라비다족의 일파다. 그러나 아리안족의 침입, 이슬람의 공세에 밀려 원 땅을 내주고 현재는 「타밀 나두」주, 그중에서도 특히 마드라스를 중심한 반도남쪽에 내려와 살고 있다. 역사의 뒤안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말이다. 문법이나 어휘가 우리와 상당히 닮았다. 「아빠」 「엄마」는 아예 똑같고 주식인 쌀은 「쏘르」, 「나」는 「나안」, 「너」는 「니」, 해는 「수리」라고 한다. 우리도 고려때까지는 해를 수리라고 불렀다. 그래선지 왠지 친밀감이 느껴진다. 한번은 경상도 사나이였던 내 동행의 말소리를 듣고 자기네 말소리와 비슷하다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까지 했으니 그 동질감이 나만의 감상만은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세상에는 별의별 희한한 풍습이 다 있으니 타밀족의 무르간축제가 그 중 하나다. 일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놀랍고도 기이한 이 일을 달마대사의 고향마을인 칸치푸람에서 마하 바리푸람으로 가는 도중에 맞닥뜨렸다.
인도의 광활한 대지와 자연풍광을 감상하면서 더위도 잊은 채 차를 달리고 있던 중이었다.도로옆 공터에 원색의 사리를 걸친 여인들과 도티(인도남자들이 하체에 걸치는 천)를 두른 남자들이 빼곡이 모여 있었다. 가보니 이게 웬일인가. 상체를 드러낸 한 남자가 온 몸에 쇠꼬챙이를 꽂은 채 명상에 잠겨 있었다.
사방을 둘러 보니 한 두사람이 아니었다. 수십명이 쇠꼬챙이를 꽂거나 바늘로 살을 떠 실을 꽂은 뒤 거기에 색색의 풍선을 매달고 있었다. 그런 고행에 들어간 남자들의 피부에는 「부티」라는 회색 재가 발라져 있었다. 한 소년이 바늘을 찌를 때마다 통증 때문인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자 소년을 둘러싸고 있던 동네 어른들이 격려풍의 기합을 박자에 맞춰 넣어 주었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쇠꼬챙이를 몸에 꽂고 있으니 얼마나 진땀이 흐르겠는가. 고행자들 옆에서 여자들이 부채질을 해주기도 했다. 또 몇푼의 지폐를 쇠꼬챙이에 매달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진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모두가 하나되어 그들의 고행에 신성함을 더해 주었다.
이런 고행의 시작과 끝은 어디일까. 그들의 신이다. 신앙의 깊이는 고행을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고행 자체가 신을 즐겁게 한다고 이들은 믿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무르간이라는 축제를 통해 온 마을사람이 서로의 친목도 도모한다. 무르간 축제때는 마을의 각 가정이 이 고행에 참여할 대표선수를 낸다. 어른이 없으면 아이라도 나와야 한다.
그 쇠꼬챙이는 인도말로 「카바디」라고 한다. 14세까지는 몸에 쇠붙이를 대지 않는 풍습 때문에 어린이들은 나무로 만든 카바디를 사용한다.
왁자지껄한 축제속에서 두 마리의 소가 끄는 마차에 신상이 실려와 사원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종교의식이 베풀어졌다. 주변에서는 재미있는 옷차림의 브라스밴드가 나와 연주를 한다.
연호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