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소년의 악몽14개월]하루 18시간 노동 『노예』

  • 입력 1997년 5월 4일 20시 28분


경기 부천시내 한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김상현군(가명·15·인천B중 2년)은 어린이날만 돌아오면 서울의 한 봉제공장에서 1년2개월간 공포에 떨며 혹독하게 일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몸을 부르르 떤다.

지난 94년5월초. 당시 초등학교 5학년(12)이던 김군은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져 경기 광명시의 한 보호소에서 살고 있었다.

김군은 어린이날을 맞아 친구 손모군(당시 13세)과 함께 참고서도 사고 서울 구경을 할겸 몰래 보호소를 빠져 나왔다.

하루만에 돈이 다 떨어지자 김군 등은 서울 중구의 한 파출소를 찾아가 사정을 털어놓았다. 경찰관 아저씨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10분 후 파출소로 온 승합차를 타고 두 소년이 도착한 곳은 서울 중구의 어느 지하 의류공장.

그때부터 김군은 철저한 감시속에 일만 하는 「어린이 기계」가 됐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방청소를 하고 형들의 양말과 속옷을 빤 뒤 오전 8시부터 작업을 시작해 자정까지 하루 18시간씩 일을 했다. 가끔 졸다가 만드는 옷이 헝클어지면 형들로부터 무자비하게 주먹세례를 받았다.

식사는 점심과 저녁뿐이었고 라면으로 때울 때가 더 많았다.

일주일만에 김군의 손과 양팔에 붉은 반점이 생겼으나 약을 발라주는 것은 고사하고 피부병이 옮는다며 잠자리에서 쫓겨났다.

먼지와 섬유가루로 가득 차 숨쉬기조차 힘든 지하작업장의 「강제노동」을 견디다 못한 김군은 한달가량 지난 어느날 밤 탈출을 결행했다가 형들에게 붙잡힌 뒤 마구 얻어맞아 입술을 여덟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김군이 다시 탈출의 꿈을 꾸게 된 것은 95년6월경.

형들이 술에 취해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밖으로 나왔다가 30분간 앞만 보고 무조건 내달린 끝에 마침내 자유를 되찾았다.

이후 김군은 경기 부천시내의 한 아동보호소에 넘겨져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현재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다.

김군은 『어린이날이 되면 부모님밑에서 자라는 내 또래 아이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면서 『부모님과 살 수 있다면 말 잘 듣고 모든 효도를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군이 일하던 의류공장에는 현재 동남아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 의류공장의 사장은 『김군이 조금만 더 참고 일하면 월급도 주고 학교도 보내주려고 했는데 그 사이를 못참고 도망갔다』고 말했다.

〈박정훈·이명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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