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왠지 시들하고 의욕이 없을 때 일부러 백화점에 가본다는 친구가 있다. 밝은 조명아래 유혹하듯 진열된 갖가지 상품들의 화사함, 오가는 사람들의 활기가 생활의 느슨한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겨 준다는 것이다.
소위 아이쇼핑이라는 말이 있었던 이십년전의 얘기다.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는 서울에서 명동의 일부 거리를 빼고는 백화점이 유일하게 화려한 곳이었다.
여간 의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고는 주머니에 돈이 없는 상태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이쇼핑」이다. 사고 싶은 물건을 보면서 아, 이 달에 월급이 나오면 저거를 사야지, 다음달에 곗돈 타면 이걸 사야지 하며 계획을 세우고 그러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살림하게 됨으로써 아이쇼핑이 삶의 의욕과 연결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신용카드란 물건이 급속히 대중화하면서 「외상 달아 놓는다」라는 말과 함께 슬그머니 없어진 것이 바로 「아이쇼핑」이라는 말이다.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이 조그만 플라스틱 카드가 모든 아이쇼핑을 진짜 「핸드쇼핑」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몇개월 할부로 해 드릴까요』라는 백화점 판매원의 진짜 유혹적인 말과 함께….
냉장고 문에서 뗀 쇼핑 메모지를 들고 동네 슈퍼를 가면 목록대로 사오게 되지만 어쩌다 백화점엘 가게 되면 핸드백에 넣은 메모지를 꺼내 볼새도 없이 「갑자기 필요해진 물건」 「지금 사둬야 싼 물건」 「아직도 나만 안 산 물건」들을 의욕적으로 쇼핑하게 된다. 그 「의욕」은 다음달 어김없이 배달되는 카드 사용 명세서에 이 물건들이 모두 숫자로 변해 일렬종대로 줄을 서면서 「좌절」로 바뀌게 마련이다. 남편에게는 『모든 게 필수품이었다』로 설명되지만….
『외상이면 소도 잡는단다』며 카드발급신청을 거부하신 어머님께 『웬 소예요…이거는요, 돈이 없는데 갑자기 누구를 만났다거나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는데 요긴하게 사용하는 것이에요』라고 가르쳐 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돈이 없으면 안쓰면 되는거야』
최연지 〈방송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