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김성기/「잠도둑들」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36분


(스탠리 코렌 지음/황금가지 펴냄) 『실컷 잠이나 잤으면 좋겠다』 주위에서 심심찮게 듣는 소리다. 하지만 정작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왜냐하면 잠을 적게 자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 부족을 과장하기도 한다. 잘 만큼 자고서도 『서너 시간밖에 못잤다』는 식으로 말이다. 혹 『나 잠 많이 자』하고 터놓고 말하면 세계화에 역행하는 무능력자 취급을 받기 때문은 아닐는지. 바로 이 대목에 심리학자 코렌은 개입한다. 「누가 우리의 잠을 훔쳐갔나」라고 물으며 그 원흉으로 에디슨을 지목한다.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이 잠 도둑이라니. 이 무슨 말인가. 코렌은 전구 발명에는 현대인의 잠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버린 이론이 스며있다고 지적한다. 잠을 줄이면 작업 시간이 늘어나고 그것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며 사회 전체의 풍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조금 자야 성공한다는 신화가 싹텄으며 그 신화의 유혹에 이끌려 오늘의 현대인은 잠에 대해 지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 잠은 정말로 나쁜 습관이고 시간 낭비인가. 훌륭한 위인이나 경영자들이 호언하듯이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은 단연 「아니다」이다. 인간의 진화는 상당한 분량의 잠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전구가 발명된 때로부터 지금까지 불과 1백여년 사이에 평균수면 시간이 하루 2시간 가량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같은 논의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뭘까. 「잠 도둑 문화」가 현대 문명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 이를 웅변하는 사례가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 스리마일섬의 「침묵의 봄」, 우주선 챌린저 호의 폭발 등이다. 이러한 대형사고는 잠빚에 시달린 사람들이 실수하는 바람에 벌어졌다. 잠의 생물학적 진화가 급속도로 달음질하는 기술에 의한 사회 환경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멀미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잠 도둑 문화는 쉽게 찾아진다. 승객중 절반 가까이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버스나 지하철 안의 풍경은 우리 역시 잠을 도둑맞은 사람들임을 보여준다. 지금 이 순간, 오후의 나른함도 점심 식사 때문만은 아니다. 실은 잠 부족 탓이다. 『잠 부족은 음주 운전만큼이나 위험합니다』 코렌이 현대인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다. 김성기<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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