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이 10m, 폭 1m10의 거대한 검은천 8폭위에 사납게 흘러내린 흰색 아크릴이 시선을 압도한다. 그 위에 세차게 퍼부은 소나기의 흔적. 공해로 파괴되고 있는 생태계의 험난한 상황을 표현한 이승택씨(65)의 「무제」다.
눈을 옆으로 돌리면 50개의 상자위에 무더기로 쌓인 두상들. 각기 다른 표정의 얼굴들이 전기장치로 움직이며 자기얼굴을 벽에 짓누르고 있다.
소외감속에서 내면의 공포를 겪고 있는 현대인의 심리를 내보인 임영선씨(38)의 「풍요로운 나라」.
모두 미국 뉴욕 소호의 세계적인 문화센터 「엑시트 아트」에 전시될 한국작가의 작품들이다. 한국의 역량있는 작가 10명이 뉴욕의 소호무대에 진출한다. 오는 28일부터 7월25일까지 열리는 「한국작가 10인전―호랑이 눈」.
이승택 임영선씨를 비롯해 육태진(36) 윤동천(40) 김영진(36) 박화영(29) 조숙진(37) 김명혜(37) 임충섭(56) 홍성민씨(33).
이들은 그동안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으로 주목을 끌어온 작가들.
뉴욕현대미술연구소의 94년 선발작가인 김영진씨,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4차원시각예술을 전공한 홍성민씨, 옛 가구를 이용한 작품으로 주목을 끄는 육태진씨는 비디오 작품을 출품한다.
나머지는 설치작품들이 주류. 윤동천씨는 티셔츠와 문자를 사용해 사회의 강요된 이데올로기를 표현하는 작품을 출품한다. 95광주비엔날레 출품작가인 김명혜씨는 열선과 압력계를 이용해 억압적인 분위기의 「소외된 숨」을 출품한다.
지난 82년 설립된 「엑시트 아트」는 비영리 문화센터로 실험적이며 역사성을 지닌 작품들을 전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이목을 끌어왔다. 이 전시관은 세계 각국의 미술을 소개하는 「퓨처라마」프로그램을 신설, 올해부터 실시한다. 그 첫번째로 한국작가들이 선택됐다.
이번 전시회는 서울의 일민미술관과 뉴욕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 김유연씨가 함께 추진, 성사됐다. 김씨는 『역량있는 한국작가들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적극 추진했다』며 『국내작가들의 본격적인 해외소개로 전시회 전부터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작 품은 내년 1월부터 일민미술관에 재전시된다.
〈이원홍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