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키드북포럼]「하늘만큼땅만큼」,살아가는 지혜가득

  • 입력 1997년 5월 24일 09시 19분


푸른 바다의 드넓은 자유를 찾아 달팽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오징어가 된 어느 달팽이 이야기. 유채꽃 대궁이 해님이 보고 싶어 목을 길게 내밀은 어느 봄날 아침. 달팽이와 배추벌레가 유채밭 언덕을 사이좋게 걷고 있다. 침대(달팽이 껍데기)를 지고 다니는 달팽이는 걸음이 아주 더디다. 배추벌레가 한심하다는듯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무거운 침대를 들고 다니니?』 『아무데서나 잘 수 있고 금세 숨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데…』 『짐이 없어야 자유로운 거 아냐』 『아니야. 많이 가질수록 좋은 거야』 갑자기 참새가 나타나자 침대 속으로 쏙 숨었다가 고개를 비쭉 내미는 달팽이. 『이래도 나를 비웃겠니?』 『나는 위험해도 자유가 좋아』 어느날 아침, 달팽이가 하도 눈이 부셔서 눈을 떠 보니 그 사이에 노란 유채꽃이 활짝 피어 있다. 달팽이가 배추벌레가 잠자는 고치를 향해 소리친다. 『얘, 꽃 좀 봐』 그런데 아,아, 고치 속에서 나오는 것은 배추벌레가 아니라 눈부시게 하얀 날개를 가진 나비 한마리. 나비는 노란 유채꽃밭 위로 푸른 하늘을 향해 마음껏 훨훨 날아다닌다. 달팽이는 갑자기 자기 침대가 무겁게 느껴졌다. 배추벌레가 입버릇처럼 하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바다로 가봐. 거기엔 푸른 바다의 드넓은 자유가 있어』 미세기에서 펴낸 「하늘만큼 땅만큼」(전3권)은 여느 동화와 많이 다르다. 푸른 바다의 드넓은 자유를 찾아 달팽이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오징어가 되다니…. 언뜻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연상되는 묵직한 주제. 흔히 동화하면 꿈꾸는 듯한 알록달록한 환상의 세계와 아기의 배냇짓을 지켜보는듯한 앙증맞음, 그리고 웃음이 묻어나는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늘만큼…」은 이와 다르다. 동화에 담긴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고 선명해서 눈이 시릴 정도다. 그러나 동화는 어린이들이 자라서 마주서야 하는 세상에 관한 정보와 살아가는 지혜를 미리 일러주기도 한다. 이럴 때 동화는 우화를 닮는다. 「침대를 버린 달팽이」에는 아예 글쓴이(정채봉)의 친필 메시지도 있다. 「짐이 가벼워야 멀리 갈 수 있다」는 철학적 잠언. 개떡 이야기가 우리것과 옛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게 뭔지 알아맞혀 볼래?」는 소설가인 「박완서 할머니」가, 외눈박이 고양이를 그린 「외눈박이 한세」는 시인 「곽재구 아저씨」가 지었다. 4∼7세용. 각권 6,000원. 〈이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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