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김영민/「작은 불꽃」

  • 입력 1997년 5월 27일 08시 33분


「작은 불꽃」/조이스 럽 지음/한국신학연구소 펴냄 삶을 문제풀이의 길로 비유하자면, 그 길은 두겹으로 얽혀 있다. 그 중의 한 길을 해결(解決)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를 해소(解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결은 대체로 성공적인 인식이나 조작의 결과다. 그러므로 탁월한 재능과 올바른 방식만 있으면 해결의 열쇠는 손에 넣은 셈이다. 해결은 특정한 「문제」를 풀지만, 해소의 과정에서 풀리는 것은 「마음」이다. 그것은 마음의 짐을 풀어놓아 스스로 해방되는 경지이며, 오랜 연성(鍊成)의 경험이 선사하는 성숙의 지평이다. 가령 생로병사와 같은 우리 삶의 한계경험은 탁월한 재능이나 수완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해소의 긴 과정을 통해 걸러지는 놀라운 성숙의 계기가 된다. 조이스 럽 수녀의 「작은 불꽃」은 삶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성숙의 불꽃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의 체험이 글의 골간을 이루지만, 따스한 필치와 행간을 스미는 진솔함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감싼다. 1백쪽을 겨우 넘기는 이 책의 메시지는 간명하다. 어둠은 삶의 어느 구석에서든 잠복해 있다. 이 어둠의 한계경험은 이중적이다. 대처하는 태도에 따라서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성숙의 길로 초대하는 내면세계의 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길에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어둠 앞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좌절하거나 기피하거나 섣부른 해결을 욕심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책은 「긴 해소」의 과정을 제시한다. 오히려 어둠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그속에 배태한 성스러움에 눈을 돌려, 우리 영혼의 성숙을 위한 계기로 삼도록 유도한다. 삶이 몰고다니는 어둠의 한 복판에는 우리를 내적인 성숙으로 키울 수 있는 영혼의 비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자궁 속의 어둠을 제대로 견딜 때 비로소 출산을 향한 수축이 시작되듯이 말이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익명의, 진부한 노래 가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은 그 가사의 실체를 드러내고, 우리 실존의 실명(實名)으로 되살려내고 있다. 김영민(한일신학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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