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지음/하늘연못 펴냄)
아마도 지금 삽십대 초반에 들어선 사람들이라면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만나게된 어느 한 시기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햇살이 나른하게 깔리던 중학교 국어시간,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을 기억하는가?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의 의미와 인간의 의지를 넘어서는 운명의 힘 따위를 피천득 특유의 담박한 문체로 묘파하고 있는 그 글은 세번의 인연이 스치기만 했을 뿐 결국은 이뤄지지 않은 사랑의 대상, 아사코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의 회한을 다음과 같은 대화로 기억하고 있다. 『그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새로 나온 소설 「세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정교과서의 힘은 위대했다. 그날 이후 나에게 「인연」과 「세월」은 별개의 텍스트가 아니었다. 「인연」 속에 「세월」이 흐르고 「세월」 속에 「인연」이 자리잡게 마련인 것이 세상사라면 피천득은 가장 경제적으로 우리에게 버지니아 울프를 소개한 셈이다. 몇년 전에 인구에 회자되던 「자기 만의 방」이 우리 사회를 강타한 페미니즘의 열풍을 타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울프를 부각시킨 측면이 없지 않지만 나에게 그녀는 여전히 시간의 불가역성과 고투하는 예민한 영혼으로 다가올 따름인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최근 발간된 그녀의 유고단편집 「속상하고 창피한 마음」(하늘연못)은 다시 한번 「성찰하는 울프」를 만나는 반가움을 선사한다. 타인들의 시선 속에서 분산되는 자아의 정체감 상실을 다룬 표제작이나 부르주아적 결혼의 허구성을 토끼라는 장치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래핀과 래피노바」, 화려한 외피에 가려진 여성의 헐벗은 실존을 확인하게 해주는 「거울 속의 여인」 등 각각의 단편들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보여주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도전적인 페미니스트의 외양을 띠지 않을 수 없었던 울프의 작가적 감수성과 내면적 상처에 다가갈 수 있다.
오늘날의 모든 여류작가들의 목소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울프의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은 그녀를 아직도 여전히 「현대적」인 작가의 하나로 각인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이 울프의 시대와 달라졌다면 여자들의 내면적 고통의 성질도 이제는 달라져야만 하지 않겠는가? 거울에 비친 자화상 같은 울프를 바라보는 것, 그것은 정녕 그녀는 몰랐던 나의 「고통」에 다름 아니었다.
신수정(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