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공지영/「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 입력 1997년 6월 17일 07시 54분


[시오노 나나미 지음/한길사 펴냄] 당대의 삶속에서 우리가 맞닥뜨리는 정치는 가끔 우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 정도로 잔혹하지만 1천년쯤 후에 되돌아본다면 어쩌면 이 진절머리나는 현실도 「용의 눈물」처럼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재미있고 그래서 또 허망하다. 어쨌든 이 책을 접하기까지 내게 있어 마키아벨리란 냉혹한 정치사상을 가진 인물의 표본일 뿐이었다. 정치학자들이 지적하는대로 그는 그 자신의 본연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알려진 대표적인 사람이다. 하기는 석가나 예수, 혹은 마르크시즘이나 페미니즘이 그렇듯 잘못 알려진 인물과 사상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그런 비난에 가까운 오해들은 언제나 문외한들에 의해 주도되는 법이다. 하지만 이제 마키아벨리 하면 나는 한 쓸쓸하고 가난한 이상주의자를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그는 한마디로 5백년 전 피렌체에서 젊은 나이로 명예퇴직(?) 당한 인물이었으며 권력자들이 심심풀이로 읽다가 팽개치는 정치보고서를 쓰면서 취직이 될 날을 기다리다 결국 취직도 못하고 죽은 사내였다. 그 고독하고 암담한 시간 내내 그가 완성한 글들이 5백년 후의 우리와 만나게 된다. 사마천이 생식기가 잘리는 처참한 궁형(宮刑)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사기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공자가 등용되었다면 논어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불행한 그의 운명이 그를 오늘날까지도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정치학자로 남겨 놓은 것이다. 그러니 역사란, 혹은 글이란, 아니 이 모든 것을 거칠게 하나의 덩어리로 묶어 운명이란 확실히 언제나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역사를 즐기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에서 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그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해보고자 하는 한 초라한 사나이의 눈물겨운 몸부림을 읽었고 역사는 이렇듯 당대의 현실논리에서 탈락한 불행한 이들의 몸부림에 힘입어 반발짝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는 확신을 얻었으니까. 1997년 초여름 밤, 이 어지러운 대한민국에서 마키아벨리를 읽고 그런 생각을 하는 소설가가 한명 있다는 것은 시오노 나나미도, 마키아벨리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리라. 나는 문득 불교도처럼 겸허해지고 말았다. 공지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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