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든」<헨리 D 소로 지음· 이레 펴냄>
우선 내가 이 위대한 책을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서평을 쓰는 걸 무덤에 누운 저자 소로와 독자대중께서 용서해 주길 바란다. 시간에 쫓기었다기보다는 시간이 너무 많아 나는 지금 일주일 넘게 이 책을 붙들고 있다. 한구절 한구절 밑줄을 치며 음미하느라 진도가 안 나갔던 것이다.
「월든」은 한마디로 뭐라 설명하기가 애매한 책이다.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안정된 직업과 미래를 거부하고 2년여간 월든 호숫가 숲 속에 들어가 손수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자급자족했던 고집스런 은둔자의 일기인 줄만 알고 유유자적 읽다 보면, 어느새 어느 정치경제학의 고전에 못지않은 날카로운 현실분석이 우리를 쑤신다. 「노동자는 단순한 기계 이외에 다른 아무 것도 될 시간이 없다. 인간이 향상하려면 자신의 무지를 항상 기억해야 하는데 자기가 아는 바를 그처럼 자주 사용해야만 하는 노동자가 어떻게 항상 자신의 무지를 기억할 수 있겠는가」. 자본의 무시무시한 속도전에 치일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삶을 이처럼 간명하게, 단 두 문장으로 설명하다니…. 이 보기드문 통찰력의 소유자가 때로 일급 소설가 못지않은 아름다운 자연묘사로 나를 놀라게 했다.
「안개는 무슨 밤의 비밀회의를 막 끝낸 유령들처럼 살금살금 숲의 모든 방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면 일년 중 약6주일간만 일하고도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벌 수 있다는 「숲 생활의 경제학」에 잠시 나는 솔깃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처럼 설탕과 효모가 들어가지 않은 통밀빵만으로 아침을 때울 수 있다면…. 일에서든, 연애에서든 뛰어난 계산가가 아니면 성공하기 힘든 문명세계에 대한 저자의 통렬한 비판이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나 또한 사는데 무척이나 서툰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1854년에 출간된 이래 이 책에 대해 나온 수많은 찬사들에 또 하나의 찬사를 보태느니 차라리 나를 울렸던 문장 하나를 더 인용하며 글을 맺는 게 낫겠다. 「이 들떠 있고 신경질적이고 어수선하고 천박한 19세기에 사는 것보다는 이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서있거나 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싶다」. 20세기가 끝나가는 지금, 나는 묻고 싶다. 인생의 어느 계절에 이르면 나도 그처럼 훌훌 털고 초연해질 수 있을까?
최영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