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은 있어도 컴맹은 없다』…원로방 컴마니아 수두룩

  • 입력 1997년 8월 6일 07시 23분


『나이 좀 먹었다고 컴퓨터를 못하는 것은 무사안일하기 때문이야. 안될 게 뭐가 있어. 의욕이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어』 姜泰遠(강태원·77)씨는 PC를 아예 젖혀놓는 40,50대의 장년층을 보면 따끔하게 충고한다. 강씨가 컴퓨터를 배운 것은 지난 89년. 「머리는 백발이지만 죽기 전에 컴퓨터가 뭔지 한번 알아나 보자」는 생각으로 동네 컴퓨터학원을 찾았다. 교실은 젊은이들 천지. 『웬 노인』하며 수군대는 신세대들 사이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낯선 용어를 익히고 자판을 두드렸다. 그는 2년 동안 하루도 학원나가는 일을거르지 않았다. 베이식(BAS IC)같은 프로그램언어와 각종 사무용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배웠다. 좀 알만하니까 이젠 욕심이 생겼다. 강씨의 지적 호기심은 동네 학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그는 컴퓨터책을 보고 독학을 시작했다. 갖고 있던 XT컴퓨터 대신 286 조립컴퓨터를 구입했다. 모르는 것은 서울 청계천 전자상가로 나가 상인들에게 직접 물어가며 배웠다. 강씨는 어느새 상인들 사이에 「컴퓨터 할아버지」란 별명이 붙었다. 그는 지난 92년 한국PC통신의 하이텔에서 개설한 「원로방」에 1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지금은 펜티엄컴퓨터로 멀티미디어통신을 즐기는 「컴도사」다. 원로방에는 강씨처럼 정보화시대를 의욕적으로 살아가는 1만여명의 노인들이 있다. 컴퓨터로 멋을 내는 할아버지들도 꽤 있다. 崔昌鎬(최창호·85)씨는 매주 일요일 원로방에 영시(英詩)를 한 수 띄우는 것으로 유명한 회원. 그는 중앙대 영문과 교수로 일했던 전공을 살려 영시에 대한 상세한 해설도 해주고 있다. 최씨는 『평생동안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펴내기 위해 원고를 쓰고 있는데 컴퓨터가 있어 천만다행이야. 손이 떨려서 펜으로는 쓸 수가 없거든』이라고 털어놨다. PC통신으로 가족들과 전자우편을 교환하는 신세대 할아버지도 적지 않다. 서울에 사는 陳錤洪(진기홍·83)씨는 자녀 5남매가 모두 대전 대덕연구단지 등 지방에 내려가 있는 탓에 전자우편으로 소식을 나눈다. 진씨는 『전자우편을 주고 받는 것이 시외전화를 하는 것보다 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기록으로 남아 좋다. 조만간 PC통신으로 온라인 가족회의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노인을 위한 PC통신교육에도 자원봉사자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주 서울 신사전화국에서 열린 교육에서는 동아일보편집국장을 지낸 金永上(김영상·80)씨 등 PC통신을 배우러 나온 40여명을 상대로 개인교사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원로방 회장 柳京熙(유경희·62)씨는 『PC통신을 배우게 되면 신세대와 자연스럽게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된다』면서 『노인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65세 이상의 고령자에게는 상이군경이나 신체장애인처럼 PC통신 전화요금을 할인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PC통신교육을 받고 한두달 열심히 활동하던 회원이 『전화요금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며느리의 타박에 그만 둘 수밖에 없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김홍중기자〉 ▼ 하이텔 원로방은 어떤 곳 자칫 소외되기 쉬운 노인들에게 PC통신은 새로운 안식처다. 온라인으로 친구를 사귀며 건강상담 레저정보 등을 얻기도 하고 외부모임을 통해 친목을 다지기도 한다. 한국PC통신의 하이텔이 운영하는 「원로방(go silver)」은 대표적인 노인전용 PC통신서비스. 원로방은 노년층이 새로운 정보사회에 쉽게 적응하고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각종 정보를 제공한다. 60세 이상이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원로방에는 비슷한 취미를 가진 노인들이 모여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금빛촌」, 원로들의 지혜와 경륜을 나누는 「노변정담」, 여성회원들의 전용공간인 「오죽헌」 등 다양한 소모임과 게시판이 마련돼 있다. 특히 「곰방대와 크레용」은 하이텔의 어린이무료회원과 노인회원이 따스한 대화를 나누는 장소로 호응을 얻고 있다. 원로방은 일본의 고령자 PC통신모임인 「멜로소사이어티」와도 활발한 교류를 벌이고 있다. 지난 93년 「한일 원로방 PC통신 심포지엄」을 개최했으며 지난해 10월에는 서울과 도쿄를 잇는 「한일 원로영상회의」를 열기도 했다. 데이콤의 천리안은 「고령자구직정보」와 「원로통신동호회」를 운영한다. 「고령자구직정보」는 서울시와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지원으로 대한노인회서울시연합회가 개발한 전산망을 천리안에 연동시킨 것으로 서울시 12개 지역의 고령자취업알선센터에서 구직자와 구인업체를 연결해주고 있다. 「원로통신동호회」는 40세 이상의 장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모임으로 「원로글방」 「나도 예비작가」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공개편지」 등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김홍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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