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의 새로운 발견」 「개인의 옹호」 「역사적 억압으로부터의 탈피」….
80년대가 저문 뒤 등장한 90년대 소설들에는 일제히 이런 표제어가 나부꼈다. 「역사현장」으로 달려갔던 80년대에 대한 반작용처럼 「실존」과 「내면탐색」으로 한껏 기울었던 90년대 소설들.
그러나 최근 평단에서는 내면으로 파고드는 90년대 소설들에 대해 반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90년대 소설들이 80년대의 집단적 이념편향을 흔드는데 한몫했지만 이제는 이런 유의 작품이 각종 문학상을 휩쓸고 문학지망생에게 교과서로 받아들여져 또 다른 타성으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소설」에 본격적으로 메스를 대는 이는 계간 「포에티카」 가을호에 기고하는 황국명교수(인제대).
그는 최인훈의 「화두」 이후 박완서 송기원 신경숙 김형경 양귀자 구효서 박상우 등이 글쓰기와 관련된 신변사나 성장과정을 모티브로 삼아 쓴 작품을 「내성적 신변소설」로 구분한다.
황교수는 『소설가들이 90년대 들어 작품속의 세계와 작중인물을 작가 자신으로 대체하는 기이한 「동성애적」 경향을 드러낸다』고 전제한 뒤 『소설은 작가의 독백무대가 아니라 여러 타인들이 어울려 만들어내는 공간이고 때로 작가 자신의 세계관에 대립되는 목소리도 용납함으로써 좋은 소설이 탄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작가가 자신이 누구냐에 관심을 지니면 지닐수록 「우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은 상실된다』는 것이 그의 경고.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생산적인 대화를 위하여」를 기고하는 평론가 이성욱씨는 『80년대 소설들이 역사적 과제가 해결되면 개인의 문제도 해소될 것이라는 식의 오류를 저질렀다면 90년대 작품들에서는 역사 대신 개인이 주어로 대체됐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씨는 윤대녕씨의 「은어낚시통신」 등을 예로 들며 『등장인물들이 한국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에서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정치 경제 이데올로기적 배경이 드러나지 않는다』며 「역사적 현실이 사상(捨象)된 개인이 등장해 끝없이 자기 안으로만 파고드는 형국」이라고 90년대 소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평론가 이광호씨는 최근의 비판 흐름에 대해 『현실에 뿌리를 둔 소설을 쓰자는 것이 80년대의 리얼리즘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다』며 『카프카는 초현실적인 기법으로도 현대사회의 모순을 누구보다 잘 그려내지 않았는가. 90년대의 작가들은 이제 역사와 개인의 연결고리를 찾아 「제삼의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