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디디에 뱅상 지음/푸른숲 펴냄]
악마는 과연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인류가 생존해온 이래 끊임없이 지속되어온 질문이다. 그것에 대한 정의는 선과 악에 대한 판단기준처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악마의 정의를 괴테식으로 「악을 행하는 힘」이라고 표현한다면 악마의 존재는 좀더 명확해진다. 지금도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 이를테면 질병이나 전쟁, 혹은 인간 내면에 깊숙이 똬리 틀고 있는 증오나 복수, 질투의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은 악을 행하는 힘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기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악마는 신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합리주의적 단언에 대해 프랑스의 사회학자 루지몽은 「악마는 신화이다. 그러므로 악마는 존재하며 끊임없이 행동한다」고 응수한다. 「인간속의 악마」의 저자는 의학과 생물학의 새로운 관찰과 접근방식을 통해 악마의 본질과 인간의 관계를 분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의 이론은 악마는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생명체를 구성하는 요소에 이미 악마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 속에 악마가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사회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시작해 의학과 생물학, 저자만의 독특한 악마생물학까지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논리를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들 속에 살고 있다는 악마와 대결하는 세 가지 전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아무런 갈등없이 악마의 유혹에 복종하는 것. 둘째,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방법. 셋째는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악마와 대결하는 것이다. 조롱하듯 악마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인간의 영혼이 생존할 수 있는 이유는 외부와 내부의 끊임없는 유혹 때문이라고. 복종하지 않고 타협하지도 않으며 끝까지 악마와 대결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만의 소중한 존엄성을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게 된다. 이럴 경우에 악마는 우리에게 필요악이 되는 존재인 셈이다.
이쯤에서 보들레르의 말을 기억해본다. 「악마가 지닌 가장 멋진 간교함은 바로 우리들이 자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다」.
조경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