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네가 하늘이다」,아이가 본 동학농민전쟁

  • 입력 1997년 8월 16일 07시 46분


버들개지가 피어나는 둑가에는 성질 급한 햇살이 들풀에 비치는 푸른 기운을 잔뜩 째려보고 있고, 굳어 있던 땅은 스르르 제풀에 꺾이듯 풀썩, 흙 구덩이가 무너져 내리는 이른 봄날. 서리가 날을 세웠던 벌판 군데군데엔 한뼘은 익히 자란 연한 보리순이 갓 세수한 아이 얼굴처럼 살갑다. 마침내 묵은 해가 가고 갑오년(1894)이 열렸다. 『부엉아, 돼지 우리 안에 새 짚 깔아 넣었당가?』 『얼릉 혀. 그라고 소란 놈 햇볕도 좀 쐬 주고잉』 『그라고 썩어 버린 건 골라 내야 헝께 고구마 움도 들여다보고…』 『참내, 종도 없고 양반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더니 어째서 나는 느는니 일복밖에 없는지 몰라』 『부엉아, 헛꿈 꾸지 말고 일이나 열심히 혀야 헌다. 시상 그리 만만허지 않응께. 암만 생각혀 봐도 고런 꿈 겉은 일이 쉽게 올 리가 없단 말여』 동화작가 이윤희씨(39)의 어린이 역사소설 「네가 하늘이다」(현암사·전4권). 동학 농민전쟁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아동문학의 품에 껴안았대서 화제다. 현실과 역사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동화 속에 담아온 이씨. 어린이들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롭고 건강한 눈을 가졌으면 하는 작가의 간절한 바람을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교과서에는 한줄도 비치지 않는 어린이 농민군 이야기. 그리고 가파른 역사의 굽이굽이를 어른들과 함께 헤쳐온 어린이들의 생생한 목격담. 역사는 어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아이들의 옹골찬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이들의 눈엔 우리 역사가 어떻게 비칠지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들어요. 외침(外侵)의 수난과 당파싸움으로 온통 얼룩져 보이지나 않을지. 문화민족이라는 자긍심도 잠깐, 삼국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답답하고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에 치여 자칫 「못난 애비」를 둔 아이들처럼 주눅들고 잔뜩 움츠러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작가는 우리 아이들이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사상이나 남북전쟁의 노예해방은 잘 알면서 동학 농민전쟁은 그저 「민란」 정도로만 이해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고 한다. 동학의 평등사상과 민족해방 정신이 갖는, 그 당당한 세계사적 의의를 깨우쳐주고 싶었다고 덧붙인다. 또 있다. 작가는 그 격변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아이들은 과연 무얼 하고 있었는지 항상 궁금했다. 「진달래 꽃잎처럼 놀란 입술빛을 하고 집안에만 꼭꼭 숨어 있었는지」 「하얀 찔레꽃 더미에서 풍기는 쐬한 향기에 취해 천방지축, 세상모르고 지냈는지」 아니면, 「누군가 방귀 뀌려고 엉덩이만 살짝 들어도 죄 보이는 명당자리를 잡고앉아 천연덕스럽게 싸움구경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고 한다. 『동학 농민전쟁 때 전남 함평에서 7,8세 된 아이가 농민군의 선봉에서 길 안내를 했다는 사료를 접하고 탁, 무릎을 쳤어요. 항시 역사의 뒷전에 밀려 있던 아이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고 할까』 그러나 아이들에게 너무 버거운 주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흔히 동화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줘야 한다고 해요. 맞는 말이에요. 그런 의미에서도 보다 나은 내일과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동심을 더욱 더 예쁘고 소중하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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