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5형제」가 지구를 지켜야죠』
10일 개막하는 연극 「리어왕」에서 셋째딸 역을 맡은 방은진의 말이다.
이말은 개막을 앞두고 돌연 잠적한 윤석화의 「대타」로 방은진이 투입된데서 나왔다.
독수리 5형제란 극단 유(대표 유인촌)의 5인방 유인촌 권성덕 송영창 정규수 그리고 방은진이 스스로 붙인 이름. 방은진은 『극단이 어려움에 빠졌다는데 내 자존심이 상하고 말고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그가 합류한 배경이 독수리의 끈 때문만은 아니다. 방은진은 배우가 인정하는 「연기 잘하는 배우」이자 「튀지 않는 여배우」이다.
연기자가 연기 잘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하랴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얼굴로, 이름값으로, 심지어 스캔들로 튀는 배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방은진은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 등등의 평은 이해할 수 없다. 혼신을 다하지 않는 배우를 어떻게 배우라고 부를 수 있나』라고 할 만큼 자부심이 강하다.
또 상대역이 돋보여야 자신도 살 수 있으며 『예쁜 배우가 있다면 나같은 개성 강한 배우도 필요하다』는 「무대의 철학」을 꿰고 있는, 보기 드문 여배우에 속한다.
무대에 설 때가 삶의 중심에 서있는 순간이며 그 이상으로 의미있는 일은 없다는 자각을 일찌감치 깨친 까닭이다.
『「홀스또메르」를 할 때 쇠종에 맞아 머리가 찢어졌는데도 모르고 연기했어요. 연극이 끝난 뒤 병원에 실려가 일곱바늘을 꿰매는데 기분이 좋더라고요. 맞아, 난 천상 배우야 싶어서 말이죠…』
「리어왕」은 여러나라 배우가 제 나라 말로 연기하며 동서양의 화해를 꾀하는 연극이라는 점에서 이번 세계연극제 참가작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끈다.
7개 국어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 자칫 이해의 장벽이 될 수도 있지만 방은진은 고개를 젓는다.
『대사를 소리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듣기 때문에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은 공주,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셋째딸 커딜리어공주다.
89년 연극 「처제의 사생활」로 데뷔한 이래 연극 「격정만리」, 영화 「301.302」 등에서 맡은 역이 다중적 또는 기괴하기까지 한 복잡한 심리의 소유자였던 탓일까, 방은진은 『내가 공주를 한대요, 글쎄』하며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내리사랑이라고는 하지만 현실에선 부모 자식간의 사랑도 조건부적일 수 있지요. 그런데 커딜리어는 서로가 서로를 능멸하고 속고 속이며 파멸로 이끄는 관계속에서도 유일하게 예외적인 인물이에요. 그러면서도 결국 죽음을 맞는 비극적 인물이죠』
그는 가장 시적인 대사를 아름답게 읊어 관객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며 『올 가을은 셰익스피어에 듬뿍 빠져보세요』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주최로 15일까지 수∼금 오후7시반, 토 오후4시반 7시반, 일 월요일 오후3시 6시반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02―3444―0651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