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어른 기피증」심각…나리양 비극후 봉변 『일쑤』

  • 입력 1997년 9월 20일 20시 26분


박나리양 유괴사건 이후 초등학생 사이에 「어른 의심하기, 피하기」현상이 확산되면서 봉변을 당하거나 불편을 겪는 어른이 늘고 있다.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골목길에서 초등학생에게 길을 묻던 양모씨(28·서울 은평구 불광동)는 파출소에 끌려갈 뻔했다. 결혼을 앞두고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던 양씨가 초등학교 3, 4학년으로 보이는 두 여학생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양씨가 말을 마치자 여학생들이 호루라기를 꺼내 불기 시작한 것. 양씨는 순찰중이던 경찰에게 경위를 설명하느라 1시간이나 허비했다. 그는 『다시는 초등학생에게 길을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오금동 아파트 주민 이모씨(32·여)는 나리양 유괴범 몽타주와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불편을 겪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이웃 초등학생들이 이씨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거나 엘리베이터도 같이 타려 하지 않는다는 것. 이씨는 『평소 그렇게 인사성 바르고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무작정 피하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나리양 유괴사건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다. 유괴사건에 대비해 학교에서는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면 가까운 파출소나 학교로 뛰어갈 것」 「낯선 사람과는 말을 일절 하지 말 것」 「호루라기를 휴대할 것」 등을 주지시키고 있지만 친절하고 인사성 바른 어린이가 돼야 한다는 기본예절교육과 상충되기 때문. 서울 서초초등학교 정온철(鄭溫澈·63)교무부장은 『일단은 학생들의 안전이 최우선이라 낯선 사람은 무조건 피하라는 원칙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같은 교육이 학생들의 「대인 기피증」으로 발전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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