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머리가 모로코의 아름다운 항구 카사블랑카를 미끌어지듯 빠져나가 미국을 향한 뒤 한동안은 그 어떤 소란스러움도 없이 고요한 항해만 계속됐다.
기말고사 치르랴, 보고서 제출하랴 모두가 바빴던 탓도 있었지만 1백일 동안 함께 살아온 벗들과 언제 또 만날지 모르는 안타까운 이별을 해야 한다는 가슴앓이가 사실은 더 큰 이유였다.
배안에서의 마지막 행사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학기를 유람선대학에서 보낸 학생들을 위해 따로 치러주는 합동졸업식과 그에 이은 축하 파티. 모두들 말쑥한 정장차림을 한 채 참석한 파티는 전자기타와 드럼, 색소폰과 플루트, 그리고 바이올린이 어우러진 복합반주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는 춤의 한마당이었다. 모두 그렇게 춤을 추며 하룻밤을 새웠다. 그렇게라도 속절없이 지나는 시간들을 붙잡으려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아쉬움을 온몸으로 나타내듯 격정의 춤을 추고 난 뒤 남는 것은 텅빈 가슴뿐이었다.
모로코를 출발한 다음날은 미국문화에 대한 특강이 있었다. 갑작스런 특강이 마련된 배경은 오랫동안 미국을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가면 「문화의 충격」을 느끼게 된다는 다소 황당한 것이었다. 따라서 잔뜩 기대를 갖고 참석한 특강에서 들은 이야기는 「미국은 범죄발생이 많은 나라입니다. 길거리에서도 총을 쏘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통용되고 있는 화폐단위는 달러입니다」라는 농담에 가까운 것뿐이었다.
알맹이 없는 특강이 끝난 뒤엔 이번 여행에 대한 저마다의 느낌을 털어놓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너나할것없이 모두의 입에서 많은 얘기들이 쏟아졌다.
『세계는 우리들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장입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이 세상에는 우리가 도움을 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눈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람선대학의 댄학장이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았다.『눈으로 보고 두손으로 만지면서 무언가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닫고 느낀 바를 바탕 삼아 여러분들의 생활이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한참 동안 계속됐다. 『이 배에 오르기 전 여러분들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조금이나마 달라졌을 겁니다. 키와 몸무게는 똑같을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약간은 성숙됐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겁니다. 그게 바로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받을 수 있는 특별 보너스입니다. 여러분들은 세계 어느 곳에 있든지 모두가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 인류에 뭔가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유람선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100일이라는 정해진 시간동안만 함께 지낸다는 상황을 미리 설정해놓고 만난 배안의 학우들. 하지만 헤어질 때는 마치 죽마고우와 떨어지는 것처럼 너무나 아쉬웠다.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친구들이었는데….
『인생이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되는 안타까움의 연속이라면 난 그런 인생을 오래 살지는 않겠다』는 독백을 하고 있을 때 댄학장이 다가왔다.
『지금 당장은 헤어지지만 모두 오랫동안 친구로 남아있을 좋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너도 그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기억되는 새로운 친구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었다.
마침내 유람선대학의 마지막 날. 미시시피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 뉴올리언스로 접어들었다. 100일 동안이나 떨어져 있었던 미국땅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공장의 높은 굴뚝들과 움직이는 많은 차와 사람들의 물결을 보면서 『역시 미국은 무언가 도전해볼 만한 무한한 가능성의 나라』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유람선대학은 여행 프로그램의 일종이라기보다는 세계 여러나라의 사람들이 한울타리안에서 서로 만나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한가족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인류공통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영어연수를 하면서 젊은 날의 100일을 정말로 보람있게 보낼 수 있었으며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여러 나라를 둘러 보면서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느꼈다.
「세계를 한권의 책이라고 가정할 때 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책의 한페이지만을 읽는 것이다」라는 말로 유람선대학의 모든 것을 대신한다.
<문형진씨 참가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