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미술]전통적 정신우월 시각 탈피…다양한 해석시도

  • 입력 1997년 10월 14일 08시 29분


몸은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통해 아름다운 조각들을 남겼고 인체의 완벽한 비례와 조화를 표현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화(理想化)된 육체를 나타낸 것이었다. 미술사가 E H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고대인들이 육체에 담긴 정신의 숭고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적었듯이 정신을 담은 「집」, 육체를 미화하는데 주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 정신의 육체에 대한 우위라는 도식이 해체되면서 수많은 미술가들은 금기를 깨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몸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정관념을 뒤엎는 행위로 미술사의 「교란자」로 불리는 미국화가 마르셀 뒤샹이 그린 누드화 「결함있는 풍경」(1946)은 최근 연구결과 정액을 섞어 그린 것으로 밝혀져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인체에 실제 체모를 붙인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체모는 회화 표현에 있어 금기였다. 미술사가 린다 니드는 벗은 몸을 그리는 것을 「예술」과 「외설」로 나누었다. 사회의 도덕규범 내에 있는 것은 「예술」이며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외설」이었다. 체모가 그 기준의 하나였다. 체모는 인간의 동물적 특징을 나타내며 성적인 열망을 표현한 것으로 도덕규범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서양 누드화에서 체모를 그리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마네(프랑스)가 누워있는 여인의 누드를 그린 「올렝피아」(1863)에서 체모의 일부를 그려 변화의 조짐을 예고한 이래 「체모 금기」는 곧 깨졌다. 금기가 깨지자 몸에 대한 관심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몸자체를 예술로 보고 몸의 행위나 흔적을 예술작품으로 내세우는 현상도 있었다. 이탈리아 미술가 피에르 만조니는 자신의 배설물을 90개의 통조림으로 만든 「미술가의 똥」(1961)을 발표했다. 각각 30g으로 된 이 작품들은 당시의 금값으로 환산되어 미술수집가의 손에 들어갔다. 자신의 몸에 총을 쏘도록 하거나 좁은 곳에 들어가 수일동안 굶는 식의 극한 상황에 처한 몸을 보여주는 퍼포먼스 미술도 등장했다. 강태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교수는 저서 「현대미술의 문맥읽기」(미진사)에서 이같은 흐름을 상세히 관찰한뒤 미술인들이 몸을 이용해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강교수는 『최근의 주목받는 몸 작품들은 사회 문화적인 몸의 위상을 점검함으로써 개인의 정체성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본다. 90년대들어 주목받고 있는 미국 여류사진작가 신디 셔먼은 마네킹을 이용한 합성사진으로 토할 듯이 혐오스러운 인체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남성중심의 시각을 탈피해온 그는 이제 오물과 종양으로 뒤덮인 추한 얼굴을 표현함으로써 몸에 대한 기존 미술의 접근방식을 허물고 있다. 강교수는 『미술에 있어서의 몸은 더이상 고전주의적인 추상적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먹고 토하고 배설하는 원초적 기관』이라고 주장한다. 미술은 몸의 음울함까지 소화하려 하면서 더욱더 육체를 깊이 파고들고 있다. 지난 8월 서울 금호미술관에서는 육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기하는 「텍스트로서의 육체」전이 열렸다. 강홍구 등 19명의 젊은 작가들은 영화속에 나오는 몸의 가상이미지, 병든 몸의 혐오감, 다양하게 변화하고 싶은 육체의 욕구 등을 주제로 진지한 모색을 펼쳤다. 국내 화단에서도 「몸」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가. 오늘날 소비대중문화시대의 몸은 모든 것의 중심이 되었다. 육체가 성과 욕망으로 대표되는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 관심사에서 정신보다 몸이 우선하게 됐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체의 욕망충족을 위해 끝없이 소비해야한다. 이로 인해 닥치는 육체의 위기와 목마름은 곧 내적인 불안함으로 이어진다. 「텍스트로서의 육체」를 기획한 큐레이터 박영택씨는 『위기의 육체가 위기의 자아를 부르고 있다』며 『작가들은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육체는 생활을 점령했지만 사람들은 아직 내부로부터 이에 대한 적응논리를 찾지 못한 듯하다. 전통적인 정신위주의 논리를 무너뜨리고 찾아온 육체의 시대. 미술가들은 몸을 더욱 더 강하게 붙들고 불안한 정체성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원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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