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꽃처럼 말간 함박눈이 이른 봄을 수놓던 날, 백구는 태어났다. 눈처럼 하얀 털, 백의민족의 바로 그 하얀 도자기빛으로 태어난 진도개 백구.
백구는 주인을 못잊어 대전에서 진도까지 천리길을 달려왔다. 오로지 고향의 바다냄새를 쫓아 대전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고성으로, 고성에서 다시 해남까지 7개월을 헤매 옛주인과 만나는 백구.
동화같은 실화(實話)를 바탕으로 쓴 창작동화 「돌아온 진돗개 백구」(대교출판). 어린이 책 시장에서 보기드문 화제작이다. 출간 두달이 못돼 4쇄를 찍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작가 송재찬씨(47)는 『아마 93년이었지요. 뉴스에서 백구이야기를 듣고 뭐랄까, 「세상에 정말 이런 일도 있구나」 싶더군요. 안보면 멀어지고, 그러면서 잊혀지는게 사람 사는 이치인데…. 부모 자식간에도 이해타산이 끼여들고 너나없이 삭막해지는 세태 아닙니까』
송씨는 막바로 진도로 내려갔다. 남자 아이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인형을 가지고 노는 요즘 백구이야기에 변치않는 우정과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움, 그리고 진도개의 용맹성과 충직함을 담고 싶었다.
『동화 속에 개들이 많이 등장하기는 해요. 하지만 거의 서양개지요. 애견센터에서 파는 개도 서양개 일색이고요. 무턱대고 서양 것만 좋아라 하는 아이들에게 우리 것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싶었어요』
이 동화는 시작과 끝 부분을 빼고는 대부분 창작이다. 특히 백구가 어떻게 해서 고향집으로 되돌아오게 됐는지 그 과정은 순전히 상상 속에서 그려졌다.
대전으로 팔려간 백구. 옛집보다 훨씬 크고 좋은 새집, 인심좋은 새주인에게 듬뿍 사랑을 받는다. 그렇지만 작고 초라한 시골집의 옛주인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렵고 가난한 시절 오랫동안 따뜻한 정을 나눴던 할머니와 손녀 서영이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우연히 새 주인을 따라 생선 횟집에 들른 백구. 생선 운반트럭에서 「고향의 냄새」를 맡는다. 아, 그리운 바다….
백구는 무작정 트럭에 옮겨탄다. 이렇게 부산까지 실려온 백구는 이곳에서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떠돌이 개들과 함께 어울린다. 이들의 한결같은 푸념, 「사람들은 믿을게 못돼」.
이들과 지내다 우연히 오토바이에 치일 뻔한 사람을 구해주고 그 인연으로 고성까지 흘러가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다.
친구에게서 우연히 바다이야기를 들은 백구가 묻는다. 「바다가 어디있니? 냄새가 나지않는데…」 「응, 높은 산에 가로막혀 바다냄새가 안나는 거야」
이 말을 듣고 백구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 다시 바다로, 바다로, 바다로 향한다. 중간에서 남해대교와 진도대교가 헷갈리기도 하지만 꿈결같은 「전라도 사투리」를 길동무 삼아, 마침내 그리운 고향집으로 되돌아온다.
작가 송씨는 76년 동아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온 그는 그동안 길고 짧은 동화를 많이 발표했다. 「돌마당에 뜨는 해」(계몽사) 「작은 그림책」(창작과비평사) 「물이 없는 동화」(두산동아) 등. 이중 할머니와 손주 사이의 따뜻한 정을 손에 잡힐 듯 그린 단편동화 「할머니의 안경」은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도 나와 있다.
『신춘문예 당선소감에 「좋은 동화 한 편을 쓸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쓴 게 기억이 나요. 항상 그 말을 가슴 속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