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17세기 뉴턴의 역학이론, 18세기 라부아지에의 화학이론 등을 거쳐 「과학의 세기」인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과학혁명.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무기로 종교적 세계관을 밀어내며 위력을 떨쳤다.
20세기에 들어 각 학문영역은 첨단화라는 명목하에 세분화돼 과학기술자들 사이에서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은 심화되고 있다. 그 결과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적 의미를 거의 생각하지 않은 상태로 협소한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에 몰두하고 인문과학자들은 과학기술에 대해 숭배와 공포의 심리상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세기말은 혼돈과 복잡이 가득한 불확실의 세계. 더구나 생태계파괴 환경오염 핵전쟁위협 등 과학기술의 부작용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세분화된 과학기술은 이러한 현대사회의 위기에 해답이 되기는커녕 문제에 대한 총체적 접근조차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더이상 전문영역간의 울타리를 고집할 수 없으며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과학자들간의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자와 인문학자가 상이한 각각의 문화를 구축, 따로 논다는 비판은 벌써 50년대부터 표면화됐다. 물리학자이자 문필가인 영국의 찰스 스노가 케임브리지대에서 행한 연설이 바로 그것이다.
인문학에 종사하는 지식인들은 「열역학 제2법칙」 「질량」 「가속도」같은 과학기술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조차 모르며 대부분의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예술이나 문학작품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
스노는 『인류의 정신활동에 중요한 돌파구 및 창조의 기회는 어떤 두 규제, 두 규율, 두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 것을 감안하면 현대에는 이런 기회를 기대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모든 자연현상을 물리 화학적인 현상으로, 그리고 전체적인 체계를 단순히 부분들의 산술적인 합계로 파악하려는 근대 서구의 세계관에 대한 비판은 스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 학문간의 교류를 통해 인류문제에 공동대처하자는 움직임도 곧 싹이 텄다. 「학제간 연구」라는 개념이 대두되고 그 학제간 연구의 대표적인 조류는 국제체계과학회.
이 기구는 1955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경제학자요 철학자인 케네스 볼딩 등이 만든 「일반체계이론연구회」가 모태.지나치게 세분화된 과학의 각 영역들이 따로 떨어진 상태에서는 인류전체의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작업을 할 수 없다는데 공감, 나머지 과학의 각 영역 경계를 넘어서 인류문제를 다룰 수 있는 일반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조직은 이후 세계 각국의 호응을 얻어 86년 국제학술연합조직으로 발전, 현재 38개국의 7백여명 학자들로 구성돼 있다.
체계학적 접근은 한마디로 언제나 예기치 않았던 문제들이 발생하는 세계에 대해 「최대한 많은 변수를 고려하는 것」. 혼돈과 급변의 세계에서 기존의 단선적 단기적 정태적(靜態的)인 분석으로는 미래는커녕 과거조차 제대로 보지 못한다. 지구의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변수 1천개의 상호작용을 분석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흐름은 또 과학기술 정보화의 부작용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과 보조를 같이한다.
이 학회에는 여성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노벨 화학상수상자 일리야 프리고기네, 경영철학자인 웨스트 처치먼 등 탁월한 학자들이 참여했다. 그간 인구 환경 평화 등 새로운 차원에서의 체계윤리와 과학적 인식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