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발전과 전쟁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열강의 침입에 대한 우리 민족의 응전양식은 이후 역사전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자주성을 떨친 전쟁은 후세에도 민족적 자긍심의 토대를 형성했고 전공(戰攻)을 세운 주체가 지배층이 아닌 하층계급일 경우 이후 사회개혁이 이뤄지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역사연구회가 펴낸 한국역사특강 「한국 역사속의 전쟁」(청년사)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외침을 받아온 우리 민족에게 전쟁이 어떤 양식으로 작용해왔는가를 되짚는다.
6∼7세기 고구려와 수, 당간에 일어난 전쟁은 단순히 민족적 저항이라는 차원의 평가를 넘어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 주도권을 놓치지않으려는 고구려의 마지막 저항으로 파악된다.
한편 연개소문이 대당(對唐)강경노선을 취한 것은 내부 불만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하더라도 신라의 동맹제의를 거부한 것은 중대한 실책이었다는 평가도 내리고 있다.
전쟁이 기존 체제의 유지에 기여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조선왕조를 위기에서 건져냄으로써 5백년동안이나 왕조가 존속하는데 기여한 전쟁으로 해석된다.
두 전쟁은 가혹한 착취구조로 민란이 발생하고 정쟁이 격화되는 등 「왕조말적 현상」이 현저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관군을 대신해 민초들이 눈부신 의병활동을 보였고 이는 왕조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존재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때문에 지배세력은 백성들에게 세제경감 등 상당한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개혁이 쇠락하는 왕조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이다.
이후 청일전쟁부터 한국전쟁까지 한반도가 외세 열강의 싸움터로 전락하면서 우리민족의 자주적 역사발전이 벽에 부딪히는 과정이 분석된다.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