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에서 마포로 건너가는 서강대교 바로 밑에는 철새들의 낙원이 된 밤섬(율도·栗島)이 있다. 옛 문헌에 따르면 여의도와 밤섬은 한강물이 불어나면 갈라지고 줄면 이어지는 한 섬이었다.
밤섬은 마포언덕에서 내려다 보면 마치 밤알을 엎어놓은 것처럼 보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 「율도명사(栗島明沙)」라고 해 여의도 밤섬 주변의 길고 깨끗한 백사장은 「서호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밤섬은 또 조선시대의 엄격한 체제속에서 그나마 「반체제 문화」가 숨쉬었던 곳이다. 남녀관계를 악덕시해 계집녀(女)자를 쓸 때도 반듯이 쓰면 흉이 된다 해서 일부러 비뚤어지게 쓰는 경향이 있었던 꽉 막힌 체제속에서 밤섬만은 자유분방한 예외지대였다.
이 섬의 남녀는 서로 업고 업히고 정답게 강을 건너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동성동본 반상(班常)을 따지지 않고 짝을 지었다는 기록도 조선조 명종실록에 남아 있다.
또 밤섬 한복판에는 암수 은행나무 고목이 서있었다고 한다.
고려때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역성혁명으로 이성계가 정권을 잡았다는 소식을 들은 뒤 조선땅에 발을 딛지 않았던 충신 김주가 유배살이 하면서 심었다 해 신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나무다.
이 나무는 그 뒤 「금슬목」으로 이름나 사랑하고 싶은 남녀가 와서 빌면 소원성취하고 불화한 부부가 와서 빌면 화목해진다 해 성안에서 기도꾼들이 밀려들었다고 전해진다.
68년 여의도 개발을 시작하면서 밤섬을 폭파해 이제 밤섬은 흔적만 남아있다. 밤섬 주민 63가구 4백여명은 밤섬이 내려다 보이는 마포 와우산 기슭으로 이주했다.
〈정영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