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땅은 포도를 위해 있었다. 오로지 좋은 포도만을 만들어 내기 위해 덮여 있는 땅이었다.
보르도. 어떤 작물도 제대로 자랄 수 없다는 척박한 땅. 그러나 그 땅에서 유일하게 포도만은 잘 자라 오늘날 「하늘이 내린 포도주의 성지」라는 찬사를 받게 됐다. 대서양을 끼고 있는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지방. 가론강이 도르도뉴강과 합치는 곳에 보르도 시가지가 펼쳐져 있다. 11월의 포도밭에는 열매가 없었다. 9월에 시작된 포도따기가 이미 끝났기 때문. 어린 아이의 키를 넘기지 못할 만큼 작은 나무들. 갈색 잎만 매단채 서있는 포도나무들은 그러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이상의 생명력을 감추고 있었다.
포도주는 한해 동안 쏟아진 햇빛과 비, 바람의 양, 토양, 열매 따는 시기, 숙성기간 등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마법의 술」로도 불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
보르도의 와인은 샤토에서 만들어진다. 샤토는 영어로는 성(城)이라는 뜻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을 말한다. 보르도의 샤토는 대략 7천개. 그중 생 테밀리옹의 피작, 메독 지방의 모카이유 물리스와 피숑 롱그빌 등이 손꼽힌다.
생 테밀리옹이 전통적인 제조기법을 지키고 있는 반면 메독 지방은 포도주 생산과정의 대부분이 기계로 이뤄지는 현대적인 포도주 생산지다.
샤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지하에 자리잡고 있는 숙성과 저장을 위한 창고. 촛불만이 주위를 밝히고 있으며 수백개의 오크통이 층층이 쌓여 있다. 그 통에서 나오는 포도주 발효 냄새가 코를 찌르다 못해 한참 있다 보면 머리까지 아파온다.
샤토방문의 가장 매력적인 코스는 와인 테이스팅. 우선 향을 맡고 나서 잔에 비춰진 빛깔을 보고 잔을 흔들어 잔잔한 소용돌이를 만든 뒤 다시 향기를 맡고 입에 넣었을 때의 맛을 보는 게 정해진 순서.
프랑스 포도주중 최고급은 AOC. 원산지 통제명칭이라는 뜻으로 특정지역에서 만들어진 포도주를 일컫는다. VDQS는 AOC에 준하는 등급으로 AOC로 승격할 가능성이 높은 고급 포도주.
지역와인이라는 뜻의 뱅 드 페이는 중급와인이며 뱅 드 타블르는 나라 이름 말고는 지역표시가 없는 저급와인이다.
보르도에서는 이같은 전국 공통의 등급 이외에 지역에 따른 별도의 등급을 사용한다. 메독 지방에서는 1등급 와인에 프레미어 그랑 크뤼라벨을 붙이며 나머지는 그랑 크뤼라벨을 표기한다. 생 테밀리옹 지방에서는 프레미어 그랑 크뤼 클래스와 그랑 크뤼 클래스라는 두가지 등급으로 나눈다.
〈보르도〓홍순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