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고리와 요로이」 (지명관 지음/다섯수레 펴냄)
최근 우리 출판계는 한일문화비교론에 관한 책을 내놓았다. 개중에는 시세를 틈타서 깊은 고찰 없이 졸속으로 기술된 감상주의적인 문화론이 적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통해 그동안 내가 발표한 글에 대해서도 자성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지명관교수(한림대 일본학연구소장)의 「저고리와 요로이」는 다르다. 60년대 그가 편집한 「사상계」를 마치 교과서처럼 읽으며 대학을 다닌 나로서는 저자의 해박한 세계 인식에 학문적인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한일협정 반대의 여운이 남아 있던 72년, 그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강단에서, 언론지상에서 또는 저서를 통해 줄곧 한일문화에 관한 자신의 견해와 탐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인 88년 일본인들과 재일 한국인들에게 행한 연속강의와 20년만에 귀국하고 나서 일본에 써보낸 글들을 모은 것이 바로 「저고리와 요로이」다.
한국측을 저고리에, 일본측을 요로이(갑옷)에 비유한 그의 문화론은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의 과거와 현실을, 한국인들에게는 일본을 올바로 인식시키고 나아가서는 한일간의 미래를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데 정심(精深)하고 탁월한 견해를 보인다.
이 책에서 그는 고독한 일본인 이야기로부터 지워진 역사 되살리기, 일본 역사교과서에 나타난 한국 일본의 탈아시아론, 지배와 피지배의 역사논리 등 한일역사의 질곡을 논의하면서 「서로를 심판하기보다는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일을 포함하여 동아시아가 장차 평화로 가기 위해서는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초, 당―통일신라―왜 사이에 이뤄졌던 찬란한 문화교류에서 역사적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일 양국 문화에 관한 논의와 연구가 점차 확대되고 있는 요즘, 지성적이고 신중하며 그러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저고리와 요로이」야말로 이 시대 한일문화론의 진정한 고전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서연호(고려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