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책]사랑에 눈떠가는 소년소녀 그린 「소나기」

  • 입력 1997년 12월 13일 08시 15분


서울서 살다 온 윤초시네 증손녀. 소녀는 개울에다 손을 담그고 물장난을 하고 있다. 마치 서울에서는 이런 개울물을 보지못한 듯이. 벌써 며칠째 소녀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물장난이다. 어제까지는 개울 기슭에서 하더니 오늘은 징검다리 한가운데 앉아 세수를 하고 있다. 분홍 스웨터 소매를 걷어올린 팔과 목덜미가 마냥 희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 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 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훌쩍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 홱 돌아보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황순원의 「소나기」. 갓 사춘기의 물이 오르던 시절, 수증기처럼 아련히 떠오르는 알 수 없는 설렘, 두근거림,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 못할 그리움. 길벗어린이가 「작가앨범」 시리즈로 펴낸 그림동화 「소나기」. 중학교 3학년 국어교과서에서 소설로 만났던 세대들에겐 동화로 보는 소나기가 약간은 낯설다. 하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진다. 요즘 애들이 어디 그때처럼 그리 「숙맥」이던가. 언제 읽어도 간결하고 서정적인 문체가 시적인 정취를 자아내는 황순원의 단편소설. 섬세한 내면세계에 대한 묘사와 사람 사이의 교감을 그리는 휴머니즘이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온 강요배씨의 그림이 잘 스며있다. 마치 3월의 목련이 꽃이파리를 하나하나 열어가듯, 차츰 사랑에 눈을 떠가는 사춘기 소년 소년의 속마음이 은은하게 비친다.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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