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돋보기답사]세한도,여백 삼각구도 구성미 완벽

  • 입력 1997년 12월 16일 20시 38분


낯익은 그림,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 겨울바람이 휩쓸고 간 자리에 곧 무너져버릴 듯한 허름한 집 한 채, 좌우로 잣나무와 소나무 네그루가 서있고 나머지는 온통 여백뿐. 싱겁고 엉성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이 작품이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세한도는 1844년 58세의 추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문인화. 자신을 잊지 않고 먼 곳에서 책을 보내주는 제자 역관(譯官) 이상적(1804∼1865)의 정성에 감격, 그에게 그려보낸 것이다. 그림에 담긴 추사의 꼿꼿하고 엄숙한 정신이야 자주 거론됐지만 구도나 기법 등 형식에 관한 분석은 별로 없다. 하지만 세한도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탁월함을 자랑하는 명작이다. 오주석 한신대강사(한국회화사)의 설명을 따라가보자. 세한도는 두 그루씩 서있는 소나무와 잣나무를 기준으로 세개의 여백으로 나뉜다. 맨 오른쪽 첫번째 여백이 제일 넓고 가운데에서 좀 줄어들어 마지막에 가장 좁아진다. 첫번째 여백은 너무 넓다보니 휑한 느낌을 줄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그림 오른쪽 윗부분에 추사체로 「세한도」란 제목을 써넣어 휑함을 없앴고 그 옆에 세로로 낙관을 배치, 공간을 둘로 나누는 절묘함을 보였다. 세한도는 엉성해보이지만 실은 완벽한 삼각형구도다. 그림 오른쪽 아래구석과 집옆 늙은 소나무 가지를 선으로 잇고 그곳에서 그림 왼쪽 아래구석으로 선을 그리면 바로 삼각형. 오씨는 『불세출의 서예가다운 놀라운 구성력에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면서 『보고 또 보아도 세한도가 좋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추사의 기개를 표현한 그림내용 역시 놀랍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텅 빈 느낌이다. 이는 절해고도(絶海孤島)에 홀로 버려진 늙은 추사의 심정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나 역경을 견뎌내는 굳은 의지가 들어있어 한층 진가를 높여준다. 허름한 집이지만 붓의 선은 침착 단정하여 초라함 연민 따위가 들어설 틈이 없다. 그림엔 또 유배당한 옛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와 그 제자를 격려하는 스승의 따스한 마음이 어려 있다. 오씨는 『그림 오른쪽 소나무 두 그루 중 왼쪽의 곧고 젊은 나무가 없었더라면 추사의 집은 무너져 버렸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윤곽만 겨우 있는 추사의 집을 받쳐주는 튼튼한 나무, 그게 바로 추사의 제자다. 집 왼쪽의 싱싱한 잣나무 두 그루도 마찬가지. 수직상승하는 싱싱한 나무는 고독을 이겨내는 의지이자 제자를 통해 이 땅의 내일을 밝히려는 추사의 간절한 희망이다. 당대 최고의 걸작 세한도. 견고한 그림이지만 아래 한구석엔 추사의 애틋함이 숨겨진 네 글자의 붉은 도장이 찍혀있어 보는 이를 가슴 저미게 한다. 바로 「장무상망(長毋相忘·오랫동안 서로 잊지말자)」.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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