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수유6동 극동아파트에 사는 주부 허영자(許英子·44)씨의 네 식구가 매월 버리는 쓰레기량은 20ℓ짜리 규격봉투 두 봉지. 보통 가정의 일주일 분량이다.
허씨 가족이 쓰레기를 덜 버리는 이유는 단지내 이웃과 함께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모아 농가에 퇴비로 제공하기 때문.
5백74세대가 매월 32t씩 버리던 쓰레기량이 음식물을 퇴비로 따로 모은 뒤로는 19t으로 줄어 처리비용도 1백60여만원이나 절약됐다. 허씨 가족의 경우 쓰레기 봉투값이 매월 2천8백원에서 7백원으로 대폭 줄어 2천1백원씩을 절약하는 셈이 됐다.
반상회에서는 올겨울부터 난방시간도 하루 2시간에서 1시간반으로 줄이기로 해 이달 말이면 7만원이던 난방비에서 1만원 정도는 빠질 것 같다.
『처음엔 환경을 생각해서 줄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것이 경제가 어려워지니까 가계에도 적지않은 도움이 되네요』
허씨처럼 쓰레기 배출량이나 물과 에너지 사용량 등을 꼼꼼히 기록하는 「환경 가계부」 쓰기 붐이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소비지향적이고 환경파괴적인 생활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환경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환경가계부 쓰기운동은 이제 「가장 환경적인 것이 가장 경제적이더라」는 체험담으로 바뀌었다.
「녹색소비 운동」 「생활환경문화 운동」 등으로 불리는 이같은 움직임의 시초는 92년 미국에서 시작된 「지구를 위한 세계운동(GAP)」. GAP는 유엔환경계획(UNEP)의 지원을 받으며 번져나가 현재 영국 스위스 덴마크 폴란드 등 유럽을 중심으로 12개국 2만7천19 가정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생활환경운동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GAP 한국본부가 생겨 「에코가족운동」이라는 환경가계부 쓰기운동이 막 시작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53가족 2백21명을 대상으로 시험 운영한 결과 24가족 96명이 9주 과정의 가계부 쓰기를 모두 마치고 GAP 본부와 UNEP가 공동 수여하는 「지구시민증」을 받았다.
에코가족에 참여하면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쓰레기 줄이기부터 시작한다. 장바구니 들고다니기, 종이 양면쓰기, 충전기 사용하기, 1회용 음식포장재 줄이기 등이 구체적인 실천항목.
쓰레기 줄이기가 익숙해지면 △변기 수조속에 모래병 넣기 △이 닦는 동안 수돗물 잠그기 △샤워도중 1분동안 물 잠그기 등 물 아껴쓰기 항목을 병행해 나간다. 이어 에너지 절약, 자동차이용 줄이기 등으로 실천 항목을 늘여가며 가계부를 작성한다.
에코가족들은 실험기간이 끝난 뒤 결산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천들이 이뤄낸 놀라운 결실을 확인하는 즐거움을 갖는다. 이를 닦거나 면도할 때 수도꼭지를 잠그는 습관을 들여 매일 57ℓ의 물을 절약했다. 1년이면 20t이 모이며 이는 매일 5분동안 6개월간 샤워할 수 있는 양이다. 종이 1t을 재활용해 반년동안 집에서 쓸 수 있는 전력과 7천㎘의 물, 3㎥의 매립지를 아꼈다.
GAP가 올해 6개월 동안 세계 2만7천여 지구촌 에코가족이 써내려간 가계부를 집계한 결과 △쓰레기 4백10t △물 6천3백21만여ℓ △휘발유 22만2천ℓ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도 발생원별로 △쓰레기에서 46t △물에서 30t △휘발유에서 7백49t을 줄였다.
GAP 한국본부 신필균(申弼均)본부장은 『무의식적인 자원고갈식 소비태도만 바꾸어도 지구 자원의 30%를 줄일 수 있으며 의식적으로 절감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고 추산했다.
환경부는 환경가계부 쓰기운동이 빠른 속도로 번져나가도록 표준형 환경가계부를 제작, 내년초 배포하기로 했다.
〈이진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