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발전사는 곧 위험(리스크)을 정복해 온 과정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피터 번스타인이 그의 저서 「신을 거역한 사람들」에서 선언한 명제다. 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무엇인가 선택하고자 하는 욕구가 경제체제를 발전시키는 핵심 요소라는 의미.
수많은 위험을 초래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위험의 회피보다는 이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손실가능성을 이익획득의 기회로, 운명을 확률에 근거한 미래예측으로, 무기력을 선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위험관리 방안을 발전시켜온 경영학의 지혜는 유용한 측면이 있다.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위험관리의 기본적 아이디어는 도박꾼들의 머리에서 나왔다. 도박장은 위험을 계량화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실험실이었던 것. 수학자들은 도박사들의 초기 확률이론을 정보를 조직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강력한 도구로 변형했다. 이 확률이론은 숫자의 도움으로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의 적중률을 높이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그러나 확률이론은 곧 미래를 예측하는데 있어서 커다란 한계를 드러냈고 곧 매력을 잃기 시작했다. 실제 시장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로 구성돼있다. 여기에다 경제 주체인 인간의 선택행위가 대부분의 경우 비합리적이고 일관성없이 이루어진다는 점이 밝혀졌다.
합리성모델의 실패는 잘못된 인간관에 터잡았기 때문이라는 자성이 나왔다. 이 모델이 전제하는 완벽한 두뇌와 판단력을 갖춘 인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오히려 대부분의 경우 인간은 비합리적 습관에 따라 중대한 선택을 하고 있음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그러한 비합리적 특성중 하나로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를 피하려는 본능이 꼽힌다.
이를테면 주식 채권 현금 등의 운용에 있어서 위험분산 방법으로 유행한 분산투자는 한 부문에만 투자할 경우 입을 손실에 대한 후회를 줄이기 위해 선호된다는 설명이다.
또 비교적 안정적인 주식은 그렇지 않은 주식보다 선호된다. 전자의 경우 수익률이 낮고 비록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잘 알려지지 않은 주식에 투자해 실패하는 경우보다 자책감이 덜하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1883∼1946)도 주식시장이 합리성보다는 인간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전개되는 것으로 봤다. 주식시장이 완전한 합리성에 의해 돌아갈 경우 모든 투자자들은 동일한 비율의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비현실적 결론이 나온다.
분산투자에 대한 일반인들의 신뢰도 차차 감소하기 시작했다. 유가폭등 정치적 위기 등 새로운 불확실성속에서 분산투자는 원시적인 위기관리 방법으로 전락했다. 예기치않은 충격을 완화시키고 알려지지 않은 위험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한 새로운 욕구가 높아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컴퓨터.
컴퓨터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복잡한 전략을 수행하는 능력을 엄청나게 신장시켰다. 슈퍼컴퓨터는 사람의 육감에 따르는 단순한 방식을 넘어서는 좀더 합리적인 보호수단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국제분쟁 대형사고 환경오염 정치불안 등 헤아릴 수 없는 위험에 대한 인간의 관리 욕구와 그 방법의 개발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돼왔다.
위험감수를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승부욕과 도박욕은 경제성장 기술진보 등 삶의 질적 개선까지를 가능케 한 것이다. 위험관리 방안이 없었다면 현대문명은 원천적으로 건설될 수 없었다. 보험제도, 농산물 생산, 거대 혁신기업 건설 등은 모두 이러한 위험관리의 소산이다.
최근 외환위기 등 한국 금융경제의 파산상태는 국가자산운용에 있어서 위험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에 큰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공자산의 합리적 운영을 가로막는 낡은 틀이 깨지지 않는 한 나날이 새롭게 전개되는 국제적 위기양상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한정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