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독립운동가 신언준선생]임시정부 선전요원 활동

  • 입력 1998년 1월 2일 20시 41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을 도왔던 동아일보 상해특파원 은암 신언준(隱岩 申彦俊·1904∼38)선생이 2일 국가보훈처에 의해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신일철(申一澈)고려대명예교수(철학)의 부친. 조선총독부 비밀자료 ‘국외에 있는 용의(容疑) 조선인 명부’에는 백범 김구(白凡 金九)선생과 나란히 그가 올라있다. ‘동아일보 상해특파원. 중국 군관학교 간부훈련단 관계 용의자’란 설명이 붙어있다. 조선 청년을 중국군관학교에 위탁해 독립군 장교를 양성하게 된 배경에는 선생의 중국내 정계 언론계 학계 인맥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루신(魯迅)과의 교류는 깊어 현재 상해의 루신공원에는 신언준선생에게 루신이 보낸 편지가 전시되어 있을 정도다. 언론인으로서 그는 만보산사건의 진상을 동아일보에 폭로, 한중 민족간의 교류를 촉진했다. 평남 평원군에서 태어나 1921년 서북지역 민족교육의 본산인 오산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해에 건너가 진보적 청년단체인 한인학우회를 결성했다. 또 교민단이 만든 인성(仁成)학교 학감을 맡아 민족교육에 앞장섰다. 중국신문기자를 거쳐 동아일보 상해 남경특파원을 하던 그는 사실상 임시정부의 선전요원을 맡게 됐다. 국내 언론사중 중국 상해 프랑스조계(租界)에 특파원을 둔 신문은 동아일보가 유일했는데 선생은 이곳에서 병 때문에 귀국, 34세로 별세할 때까지 7년간 상해와 남경을 무대로 활약했다. 이봉창(李奉昌)의사가 일왕 처단을 위한 의거를 일으키자 의사의 선서장면 사진을 중국 언론사와 영자(英字)지에 직접 전달하고 의거의 취지를 알렸다. 평소에도 유창한 중국어와 영어로 중국의 정계 관계 인사들에게도 평소 ‘대한민국’을 알리기 위해 애썼다. 상해 일본총영사관 소속 경찰의 비밀자료에도 그의 이름이 자주 나온다. 31년 흥사단모임에서는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선생과 함께 선전활동에 나선 강사로 결정된 사실이 보인다. 교민들이 세운 인성학교 학감에 당선한 일 등에 관한 상세한 기록도 보인다. 선생은 이같은 활동으로 87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황유성·조헌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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