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아라. 무인(戊寅)의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억센 산 위로 크고 붉은 해 떠오른다. 아직 남은 어둠을 사르며 해는 장엄하고 찬란하게 떠올라 그 빛 무서운 속도로 쏟아지고 부어지고.
2
들리는가. 대숲이 일렁이고 새파랗게 바람을 자르며 옛 삼한 저 아슴하게 푸른 저녁, 시원(始原)으로부터 조선 호랑이 산을 내려오는 소리.
3
시린 새벽, 압록강수 들이마시고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서기(瑞氣)를 받으며 설화처럼 조선 호랑이가 형형한 눈빛으로 지금 산을 내려온다.
4
조선 호랑이는 포악한 맹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힘있으되 어수룩하고 용맹하되 순진한 이 땅 지킴이. 부정과 불의, 위선과 거짓을 꾸짖 판관(判官). 병마와 잡귀와 온갖 재앙을 몰아내고 토끼나 까치 같은 연약한 목숨붙이들과 더불어 사는 평화의 왕.
5
징을 울려라. 북을 쳐라.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지금 섬광처럼 조선 호랑이가 새파랗게 바람을 가르며 산을 넘는다. 들을 달린다.
6들리는가. 조선 호랑이의 포효(咆哮). 한강물이 뒤집히고 지리산이 흔들린다. 절망을 몰아내고 어둠을 꾸짖으며 새 힘, 새 소망으로 이땅에 가득 퍼지는 무인(戊寅)의 포효.
<글:김병종>
▼약력▼
나라 안팎에서 모두 열두번의 개인전을 가진 중견화가. 시카고 피악 바젤 등 국제 아트페어에 십여회 참여하여 주목을 받았고 미술대전 동아미술제 등의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작품이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중국회화연구’ ‘먹으로 그린 새가 하늘로 가네’ 등 다섯권의 저서를 냈다.
문학성 짙은 작품으로 유명하며 70년대 시공모 당선에 이어, 1980년 두차례 신춘문예(동아일보 미술평론, 중앙일보 희곡)에 당선, 문단에도 데뷔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문학상을 받았다. 서울대 미대에서 강의중.